[데스크라인]의사와 검사

전교 1등 학생들은 통상 서울대를 선택한다. 문과 1등은 법대, 이과 1등은 의대다. 이들은 영어와 수학의 귀재다. 미분 적분 확률 등 난해한 문제를 척척 풀어낸다. 대학 졸업 후 이들 중 상당수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된다. 의대생 대부분은 의료인의 길로 들어선다. 대한민국 초엘리트 대열에 합류하는 통과의례다.

두 직역 모두 생명을 다룬다. 검사는 신체의 자유를 구속할 권한을 갖는다. 사회적 생명권을 쥐락펴락한다. 막강한 권력이다.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직역이다. 각종 암은 물론 심뇌혈관 질환 수술을 통해 환자를 살려낸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들은 존경을 받는다.

문제는 성공한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특권과 동일체 의식이다. 유사시 똘똘 뭉친다.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갈등이 대표 사례다. 성공한 이들은 자칫 아집, 독단과 오류의 동굴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의정갈등은 표면적으로 행정부와 의사 단체가 주인공이다. 한 단계 들어가면 대한민국 최대 기득권 세력 간 충돌이다. 다름아닌 검사와 의사 간 헤게모니 싸움이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의 파워게임 양상이다. 행정부를 통할하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검사와 의사 집단 파워게임 결과는 어떨까. 8개월이 지난 지금도 결말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의사 단체 갈등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느낌이다. 행정부는 '밀어붙여', '버티면 이긴다'라는 전략만을 고수했다. 뚝심있는 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고집불통 역시 동전의 양면이다. 보다 유연한 대처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결과는 어떤가. 국민과 환자들은 애꿎은 싸움에 등이 터질 지경이다. 지난 9월 우려했던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 구정 연휴 응급실 대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협의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매년 명절에 생사를 걱정해야 한다.

지금 의사 단체 모습은 정부가 그 어떤 개혁과 현신안을 내더라도 반대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디 감히 신성불가침 영역인 의대 정원을 정부가 밀어붙여'라는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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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부국장

시기적으로 의대정원 백지화는 무리다. 오는 14일 대입 수능시험이 치러진다. 원점 검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재수 삼수생은 물론 직장인까지 의대를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백지화는 또 다른 측면에서 대혼란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의정 갈등은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을 상징하는 한 단면이다. 의사와 검사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에서 소통과 타협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는 어떤가.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갈등도 최고조다. 야당과 정부는 아예 등을 돌렸다.

스트롱맨 트럼프 시대가 다시 열렸다. 지구촌 보안관, 균형자를 자처하는 강한 미국 정부가 다시 세워졌다. 모든 게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다. 이를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새출발을 해야 한다. 남은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집권 후반기가 아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소통과 협상 그리고 대화를 복원시켜야 한다. 남은 30개월, 환골탈태한 용산을 기대해 본다. 지금 시대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분골쇄신이 요구된다.


김원석 부국장 stone201@etnews.com
김원석 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