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삼성 반도체는 왜

궁금한 건 이거다. 삼성 반도체가 어디서부터 잘 못 돼 흔들리고 있느냐다. 처음엔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로 가는 길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메모리 세계 1등도 어려운 일인 데,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까지 도전하겠다고 했으니 시행착오는 당연할 것이고, 결과도 단숨에 나올리 없기 때문이다. D램과 낸드,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까지 반도체의 거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잘하는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이상했다. '삼성답지 않은 삼성'의 모습이 이어졌다. 시스템 반도체 강국의 꿈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은 삼성 엑시노스는 퀄컴이나 애플은 물론 저가 보급형 제품만 출시하는 줄 알았던 미디어텍에도 밀리고, 경쟁사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메모리도 '이제는 해볼만 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가 됐다.

삼성 안팎 인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재 반도체의 가장 큰 문제는 '조직문화'로 귀결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번져 시도조차 않는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많이 나온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했다. 최고경영자가 경쟁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후임들을 질책하고 압박하면서 조직이 위축되기 시작했다는 설부터, 새롭게 시도한 수평적 조직문화가 무사안일로 흘러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삼성 반도체 출신의 한 인사는 “도전 정신이 없고 책임을 떠 맡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는 '누구도 일 하지 않는 문화'를 확산시킨 것 같다”고 했다.

삼성 반도체 새 수장이 된 전영현 부회장도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본 것 같다. 부임 첫 메시지로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한 점이나, 수십년 이어진 반도체인의 신조를 바꾸려는 것도 이같은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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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다음이다. 이제 삼성 반도체가 과연 달라질 수 있느냐다. 미래를 장담할 순 없지만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먼저 미세 조정이 아닌 대수술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특정할 순 없지만 글로벌 고객을 앞에 두고 최고 개발 담당자들이 성능 저하 책임을 서로 미루며 다툼을 벌인 일은 삼성의 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남탓 문화는 개인 혹은 특정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조직 전체에 번져 있고 뿌리를 내렸다는 얘기다. 사원들만, 혹은 임원들만 개선한다고 달라질 성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기 실적 우선주의가 낳은 폐해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최고경영자들이 임기 기간 내 성과를 내야 하는 구조가 되다보니 고대역폭메모리(HBM) 연구팀 축소와 같이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는 사실상 과거 삼성의 미래전략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뜻과 맥이 닿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전영현 부회장 명의로 이례적인 반성문을 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다며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 실현을 위해 삼성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윤건일 소재부품부장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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