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을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체코 정부에 항의했다. 한수원과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전방위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웨스팅하우스는 26일(현지시간) 체코전력공사(CEZ)가 한수원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체코반독점사무소에 진정(appeal)을 냈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수원이 체코에 수출하려는 'APR1000'이나 'APR1400' 원자로 설계는 자사가 특허권을 보유한 2세대 시스템80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전 입찰에 참여하는 사업자는 CEZ와 현지 공급업체에 제공하려는 원전 기술을 체코 측에 이전하고 2차 라이선스(특허 허가권)를 제공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APR1000과 APR1400 원자로의 원천 기술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허락 없이 관련 기술을 제삼자가 사용하게 할 권리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 자사 기술을 수출하는 데 필요한 미국 정부의 승인을 구할 법적 권리도 자신들에게 있다고 밝혔다.
일자리 문제도 끌어들였다. 웨스팅하우스는 “AP1000 원자로 대신 APR1000 원자로를 도입하면 미국 기술을 불법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체코와 미국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천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한국에 수출하게 된다”면서 “그 일자리에는 웨스팅하우스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일자리 1만5000개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의 이런 행보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수원과의 소송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한수원의 수출을 가로막기보다는 해외 시장 동반 진출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실익을 얻어내고자 하는 전략이 담겨있다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22년 10월, 한국이 한수원이 수출하려는 원전 기술이 자사 기술이라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주장하며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 중재 절차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수원은 내년 3월까지 체코 원전 수주 최종 계약을 맺어야 한다.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해결하고 미국 정부에 체코 원전 수출을 신고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앞서 미국 에너지부는 '원전 수출 신고의 주체는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여야 한다'며 한수원의 수출 신고를 반려한 바 있다. 한수원 입장에서도 웨스팅하우스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윤종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과장은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한수원이 급성장할 유럽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면서 “해외 수주 실패,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 과정에 참여해 실익을 얻는 모델을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이를 활용하기 위해 공세를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결국 합의를 통해 윈윈 모델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이런 상황을 염두한 대응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