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엑소좀, 나노기술과 한의학의 새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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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선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파킨슨 환자의 약 70%는 운동 장애가 나타나기 전 변비·복통을 자주 경험하며, 알츠하이머(치매) 환자 역시 위장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또 잦은 불안·긴장·우울 등 정신적 스트레스는 만성장질환인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유발한다.

이런 병리적 현상들은 장 상태가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반대로 뇌 상태가 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장-뇌축' 이론을 뒷받침한다.

장과 뇌는 신체 구조상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하나의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렇다면 장과 뇌의 의사소통 수단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장내 미생물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측된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은 장내 염증을 유발해 신경전달물질 발현을 통제하는데 이는 뇌신경 손상 및 불필요한 단백질 축적을 유발한다.

최근 들어 장-뇌축의 새로운 대화 통로 역할로 '엑소좀'이라는 유전물질이 떠오르고 있다. 1983년 처음 발견된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노폐물로 인식돼 '종량제 쓰레기 봉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생물정보학 발달로 엑소좀이 품은 유전물질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쓰레기 봉투가 아닌 '세포의 대화 통로'라는 것이 밝혀지게 됐다. 마치 감정을 표정·말로 전달하는 것처럼 세포는 그들의 상태를 엑소좀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파킨슨과 알츠하이머 진단에 엑소좀을 활용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기존 진단 키트들은 단백질, 대사산물, DNA, RNA 등 단일 물질로 한정된 반면, 엑소좀 나노입자 안에 이들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 기존 진단방법과 차별화된 진단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엑소좀은 혈액, 소변, 타액 등 체액에서 비교적 쉽게 분리할 수 있어 비침습적 진단 방법으로 각광받을뿐 아니라, 질환 예후 모니터링에도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다.

파킨슨 환자에 다량 축적되는 '알파-시누클린', 알츠하이머 환자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혈중 엑소좀에서 발견된 점은 행동검사, 인지기능검사의 주관적 방법에서 벗어나 발병유무를 정량화하는 동시에, 개인 맞춤형 약물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진단은 아직 환자 증상에 근거한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뤄지며, 객관적 생물학적 지표자를 활용한 바이오마커 개발은 전무하다.

필자는 정상군 30명,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혈중 엑소좀을 분석했으며, 정량화 가능한 과민성대장증후군 진단키트를 개발했다. 운 좋게도 엑소좀 내 유전물질에서 신경정신질환 관련 유전체를 다수 발견했는데 공교롭게도 장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체와 상당한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장·뇌가 연결돼 있다는 장-뇌축 이론이 과학적으로 더욱 확립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따라서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단순 소화기 질환이 아니라, 신경학적 요소와도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다시 한번 제시할 수 있다. 장-뇌축이론은 한의학의 장부(오장육부)를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된 종합체로 이해하는 것과 결이 유사해 보인다. 특히 오장육부의 균형을 중시하며, 한 장부에 병이 생기면 관련 다른 장부를 치료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엑소좀이 세포 간 대화 통로로서 다양한 생리적 신호를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은 한의학과 나노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천연성분을 엑소좀에 탑재해 전달 효능을 높이거나, 표적 세포로 정확히 전달하는 나노기술과 결합한다면, 더 효율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박기선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 kisunpark@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