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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역의료도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방 환자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방병원은 환자 수 급감과 함께 투자 동력을 상실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지역의료는 지방 회생 전제조건인 동시에 지방의 심각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재다. 위기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보통신기술(IT) 대전환을 통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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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병원에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지역의료 격차 심화…지방병원 위기

의료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환자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역과 수도권간 환자 불균형은 의사 등 의료자원 쏠림까지 양산하면서 지방의료 공동화 현상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도권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 병원의 지방 환자 수는 2013년 50만425명에서 2022년 71만3284명으로 42.5%나 늘었다. 같은 기간 진료비는 9103억원에서 2조1822억원으로 139.7% 증가하는 등 수도권이 지방 의료 수요를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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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자료: 보건복지부, 단위: 명)

이러다보니 지방 병원과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짐을 싸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이 3.47명인 반면 강원(1.81명), 전남(1.75명), 충남(1.53명), 세종(1.29명) 등은 두 명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인 응급의료 역시 지방과 수도권 편차가 크다. 2019년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이내 도착할 수 없는 인구 비율은 서울이 0%였지만 전남(36.9%), 경남(30.1%), 경북(29.7%), 강원(29.4%) 등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지역의료, IT혁신 절실

정부는 지방병원 의사 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까지 늘리는 정책을 시행하며 의료계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문제는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이들이 지방병원으로 갈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절대적인 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병원 IT혁신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기술이 '인공지능(AI)'이다. 지방의 부족한 중증질환 전문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심뇌혈관, 응급의학, 희귀질환 등을 중심으로 AI 기반 진단보조 솔루션을 활용할 경우 지역 내에서도 조기 진단과 신속한 치료까지 가능하다. 실제 메디사피엔스, 코어라인소프트, 메디컬에이아이 등 국내 의료AI 기업이 개발한 진단보조 소프트웨어(SW)는 90% 이상의 진단 정확도는 물론 의사가 발견하기 어려운 병변까지 찾아준다.

또 병원정보시스템을 활용한 지역 내 의료기관간 진료정보 교류, 실시간 환자 이송 및 병실 현황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구축해 '지역의료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전진평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강원도 내에 중증 뇌질환을 담당할 교수가 10명도 채 안되는 상황에서 읍면 단위 병원에서 뇌졸중, 뇌출혈 등을 조기 발견하고 적시에 처치할 의료자원은 사실상 없다”면서 “지방병원에서 AI를 활용해 응급·중증 심뇌혈관 질환을 빠르게 진단하면 혈압·뇌압 조절 등 초기 처치부터 거점병원으로 이송 등 수술적 처치까지 이어질 수 있어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간 협업·규제개선 나서야

지역의료 네트워크가 중요한 것은 지방으로 갈수록 고령화가 심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가 많은 반면 의료기관간 협업 체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기적인 시스템 연계와 함께 의료기관간 핫라인 개설 확대, 주기적인 현안 공유 등으로 지역의료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규제 개선과 정책 변화도 필요하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질병 진단을 보조하는 AI 솔루션이 병원에 본격 공급되고 있지만,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에만 국한하도록 했다. 실제로는 의사 수가 부족한 지방 소규모 병원에서 심뇌혈관, 희귀질환 등 어려운 영역을 진단하는데 더 효과적이지만, 자칫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제약을 뒀다. 정부가 갈등을 피하는데 정책 우선순위를 두지 말고, 국민적 효용을 높일 수 있는 쪽을 더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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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권준명 메디컬에이아디 대표(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의료AI 솔루션이 대형병원 내 의사들의 진단 정확도를 높여주는 보조적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지방에서 의료진 부족으로 진단이 어려운 질병을 선제적으로 필터링해주는 역할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면서 “현재 의원이나 중소병원 등 지역 풀뿌리 의료기관까지 사용을 확대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빠르게 치료받을 수 있는 지역의료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IT 역량을 활용해 지역의료 혁신을 추진한다면 국가 의료 서비스 수준이 한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리케 마틴스 전 유럽연합 e헬스네트워크 공동의장은 “유럽에서도 원격진료가 활발히 사용되면서 특정 지역 의료자원 쏠림현상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국도 미래의료 혁신을 위해 원격의료를 적극 활용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AI 등 다양한 IT를 접목해 지역의료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