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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시인 김상용의 1939년 작품을 보자.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밭이 한참 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 웃지요.' 전원생활 속 평화로운 삶이다. 치열한 도시 정글에 살고 있다면 왜 사냐는 물음에 시인처럼 답을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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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가 이소연 作

당신은 왜 사는가. 행복, 사랑, 명예, 돈이 삶의 목적인가. 좋은 말이지만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특별함이 없다. 나는 뭐라고 할까. '기술과 현실을 인문학으로 연결해 통찰과 아이디어를 삶에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다. 인류가 인공지능(AI)을 거부하면 당장 어떤 문제가 있을까. 조금 덜 편리할 순 있어도 사는데 문제없다. 그러나 산업과 시장이 오래 정체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본주의와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갈등과 분쟁이 격화된다. 성장페달을 계속 돌리려면 AI가 필요하다. 모든 분야에 도입할 수 있어 파급효과가 크다. 금융시장에서 AI기업가치가 오르고 투자가 늘었다. 그러나 실물시장에서 실제 수익을 내는 건 AI 반도체, 부품, 소프트웨어(SW), 장비 공급업체에 그친다. AI가 인력대체, 비용절감에 매몰되면 안된다. 검색, 업무, 창작 등 서비스에서 큰 수익을 내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AI기업은 교수, 언론, OTT와 광고를 통해 사람들이 AI에 쉽게 스며들게 만든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했다. 비 소식을 알려 사람에게 대비할 기회를 주려는 것일까. 아니다. 곤충은 습기가 많으면 날개가 무거워 낮게 난다. 제비도 곤충을 잡으려면 낮게 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상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 기존 기술로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다. 살기 위해선 새로운 먹이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AI이고, 이를 아는 것이 통찰이다. AI는 많은 혜택을 주지만 장밋빛 미래만 있진 않다. 생명, 신체 위험도 크다. 기존 기술의 위험과 왜 다른지 주목해야 한다. 철학, 경제, 사회, 문학, 예술을 함께 연구해야 AI 위험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거기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런 과정과 결과가 나의 삶을 만든다.

AI기업의 삶의 목적은 어떠해야 할까. 기업의 존재이유이고 영혼이다. 돈벌이에 그쳐선 안된다. 공동체에 도움이 돼야 한다. 정체를 명확히 하고 임직원과 고객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의류업체 L사 매장 윈도에서 목적과 비전을 적은 글을 봤다. 목적은 '고객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최고상태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고객이 의류를 입고 몸과 마음이 최고에 달하면 편안함을 넘어 자존감, 자신감, 생산성이 높아진다. 고가의 제품일수록 뿌듯하다. 값을 낮출 필요가 없고 올릴수록 잘 팔린다. L사의 비전은 뭘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제품과 경험을 창조한다. 그것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든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같이 성장한다. 건강을 매개로 헬스케어로 확장할 수 있다.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의 아바타, 가상인간이 입는 '옷감 없는' 의류도 만들 수 있다. 의류는 몸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고객이 보이고 싶은 자아를 드러내는 적극적 장치가 된다. L사가 기업의 핵심목적을 단단히 키워나가면 고객의 신뢰는 더욱 커진다. 기업의 핵심목적과 가치는 손실을 보거나 핍박을 당해도 끝내 지켜내야 한다. 창의를 더해 더 높은 단계로 끊임없이 올라야 한다. 눈에 잘 띄고 각인되어 임직원, 고객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한다. 국가, 제3자 등 누군가 부당한 이유로 핵심목적과 가치를 위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 문을 닫을 각오로 지켜야 한다. 기업이 핵심목적과 가치를 명확히 하면 나쁜 짓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누구나 하는 윤리기준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강조하기보다 기업 각자의 핵심목적, 가치와 비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이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라는 존재이유를 집요하게 묻고 확립해 내보이는 것이야말로 창의를 위한 출발신호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