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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현우 홍콩과기대(HKUST) 겸임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

최근 필자에게 엔비디아를 이을 다음 주도 종목을 알려 달라는 요청이 많다. 그 이유는 필자가 2~3년 전부터 줄곧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 가장 크게 수혜를 받는 회사는 바로 엔비디아'라고 얘기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여전히 엔비디아가 유망하다고 얘기해도 엔비디아는 그간 너무 많이 올랐기에 다른 종목을 찍어 달라고 요청한다. 과거 들었던 정보를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던 분들이 부작위 후회(regret of omission)에 기인한 보상 차원에서 차기 유망 종목을 요청하는 것이다.

필자가 AI 전문가이긴 하지만, 앞으로 상승할 종목을 정확하게 예견할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스레 전망하자면 AI 시대가 지속되는 한 반도체 부품·장비와 전력 그리고 에너지 종목이 유망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들 산업이 AI 생태계 내에서 핵심 밸류체인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픈AI, 앤쓰로픽, 미스트랄과 같이 AI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도 유망하지만, 당장 AI의 수혜를 받는 곳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필요한 반도체 부품·장비를 공급하는 기업과 데이터센터 구동을 위한 전력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실제 유수의 자산운용사들은 '픽앤드쇼블(pick and shovel)'이라는 투자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19세기 미 서부개척 시대에 돈을 벌었던 이들이 금광을 찾아 헤맸던 광부들이 아니라 이들에게 삽과 곡괭이를 판매했던 상인이라는 점에 착안한 전략이다.

미 월스트리트의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S&P500 유틸리티와 에너지 종목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국내 증시도 다르지 않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지난 6개월간 66% 상승했으며, 삼화전기, 대원전선 등 전력설비 종목의 주가는 상반기 동안 3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AI 밸류체인 내에서 수혜가 예상되지만, 아직 주가에 반영되지 않은 다수 종목이 있다. 우리가 반도체 부품·장비 업종과 더불어 유틸리티, 에너지 업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얼마 전 사석에서 뵈었던 서울대 공대 교수로부터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세계적 수준의 AI 모델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우수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학습용 반도체인 GPU가 충분치 않고, AI 모형 학습에 필요한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를 들었다. 복잡한 행정절차 때문에 GPU 구매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학교 건물이 AI 개발에 필요한 대용량의 전력 수요를 감당치 못한다는 푸념이었다.

현재 서울대의 가용 전력량은 총 5만6000kWh(킬로와트시)이며, 냉방이 가동되는 여름철에는 사용 전력량이 80%에 달한다. AI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대학 건물의 정전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사정은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이 있어도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인 장비와 전기 없이는 선도적인 연구개발이 불가능하다.

AI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올해 88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1110TWh로 향후 6년간 12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인터넷 검색 한 건당 필요한 전력량이 0.3Wh(와트시)였다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질의 응답에는 10배 가까운 2.9Wh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멀티모달 AI 경우 대규모언어모형(LLM) 기반 AI에 비해 60배 많은 전력량을 요구한다. 우리가 사회 인프라로서의 전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AI 밸류체인에는 반도체, 전력 인프라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과 같은 에너지 산업도 포함된다. 우리는 이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도체와 전력 수요에 사회 인프라 조성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보릿고개를 겪던 가난한 시절 해외 차관을 도입해 사회 인프라인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헤 경제 발전을 견인했던 현대사를 떠올려야 한다. 더불어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한 배경에는 초고속 정보통신망이라는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선행되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이 바로 정부가 앞장서 사회 인프라로서의 반도체와 전력 산업 육성에 집중할 시기다.

황보현우 홍콩과기대(HKUST) 겸임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