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했다. 각 정당들은 1호 법안을 마련하며 분주하다. 지난 21대 국회가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이란 오명을 달았던 만큼 이번 국회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더욱 크다. 앞선 국회가 '반면교사'가 될 것이란 점에서다.
특히 21대 국회에서 안 된 산업계 법안은 수두룩했다. 인공지능(AI)산업을 육성과 기술 신뢰확보 근거를 찾기 위한 'AI기본법'과 기술 유출을 막는 '산업기술보호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영구저장 시설 건설을 위한 '고준위특별법', 전력망 확충에 관한 '전력망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법안은 시급성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우리 기업의 핵심 기술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커지면서 유출 침해 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통과한 후 12월 소위 심사를 진행했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되면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지됐다.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유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보호할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대표 첨단산업 기업들은 내부 직원이 핵심기술을 빼돌리는 기술유출에 대한 소송을 잇따라 진행하고 있다.
지난 달 말에 검찰은 전직 삼성전자 IP센터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은 안 모 전 센터장이 내부 기밀자료인 특허 분석 정보를 빼돌린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국적의 내부 직원이 기술을 빼돌린 정황을 적발했다. 회사 측은 중국인 국적 A씨가 퇴사 직전 핵심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과 관련한 자료를 A4용지 3000여장 분량 출력한 것으로 파악했다. 현재 A씨는 기소돼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최근 5년 간 매년 늘고 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해외기술 유출사건은 모두 96건으로 작년에만 23건 기술유출이 일어났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저장시설 건설을 위한 특별법(고준위특별법)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당장 오는 2030년부터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소 내 임시저장 시설이 포화되기 시작하면 향후 원전 정지까지 이어질 수 있다.
고준위특별법은 원전 가동에 따라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방폐장의 부지 선정·건설 운영 등에 관해 담고 있다. 여야 갈등으로 21대 국회에서 산중위 법안소위에서 1년 이상 계류되다 결국 자동 폐지됐다. 22대 국회 시작 후 발의를 거쳐도 최소 1년 이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 산업 진흥과 신뢰기반 조성에 관한 법안(AI기본법)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AI기본법은 AI산업 육성에 필요한 정부 전담조직 신설과 연구개발지원, 기술 개발 우선허용·사후 규제 등을 담고 있다. 글로벌 AI산업 경쟁이 치열하지만 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중장기 발전계획도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닷새가 채 안됐다. 여야는 원 구성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해 줄다리기 협상만 반복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대내외 정세가 심상찮은 시국이다.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민심을 읽고 '새로운 국회'를 보여줘야 할 때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