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174〉기술혁신의 모멘텀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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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경제사회연구원 기술정책센터장·서울대학교 객원교수

기술혁신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다. 세계는 수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과학기술로부터 출발한 혁신이 경제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했다. 18세기 영국의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미국의 전기, 컴퓨터 개발에 의한 2차, 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으며 기술혁신과 변화는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서구 국가들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는데, 신기술은 특허로 보호받고 개발에 대한 이익은 기술표준으로 보장받는 방식이었다. 각국의 자국 기술에 대한 보호와 시장확보는 이러한 국제질서 안에서 유지되었으며 자유로운 시장경제로의 순환이 이루어졌다.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적용되고 사회, 경제, 문화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되어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낸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국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기술개발을 위한 충분한 자금과 인프라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왔다. 또 기술개발의 주체가 되는 우수한 인력 양성과 공급을 통해 기술수준이 유지되도록 노력했다. 산업 측면에서는 시장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기술발전 방향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연구개발 주체에 대한 세제 지원, 연구개발 결과물에 대한 권리 보호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기술혁신이 지속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연구개발 주체와 연구개발 시스템은 상호작용을 통해 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견인한다.

최근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급격한 기술의 발전속도는 이러한 기술혁신 시스템을 흔들어 놓고 있다. 중국의 기술혁신과 시장확대 속도는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던져주었으며, 기술혁신과 보상에 대한 국제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기술혁신의 요소 중 투자 측면에서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으로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13억 인구에 대한 교육을 통해 우수한 연구인력도 양성해 활용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인공위성을 비롯한 우주, 해저케이블 등의 네트워크, 대형 연구장비인 핵융합장치, 가속기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빠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충분한 규모의 기술혁신 환경이 조성돼 있다.

중국은 강력한 국가주도 계획하에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경제개발기 우리나라 상황이 그러했듯이 혁신을 선도하기보다는 세계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는 발전모델로, 우수한 인재와 대규모 투자, 막대한 시장을 장점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침해 등이 문제로 지적됏다. 기술수준 또한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핵심 원천기술에 있어 서구 기술선진국 대비 뒤처져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기술수준 격차가 존재한다. 내부적으로는 국가주도 시스템에 의한 연구환경이나 보상체계의 한계로 인한 인력유출, 자국 내 인력 배출의 한계, 글로벌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기업의 성숙도 부족 등이 혁신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국가주도 기술혁신 시스템은 제한된 효율성과 혁신성을 갖는다. 추격이나 모방이 가능한 기술의 경우 국가주도 시스템이 성공적일 수 있으나 디지털 산업과 같이 민간의 역량이 주도하는 분야에서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기술혁신 환경은 모든 조건에 있어 희망적이지 않다. 대규모 투자를 가능케 할 막대한 자금력도 없고, 우수한 인력의 절대 규모도 미국이나 중국에 비교할 수 없다. 기술혁신을 테스트할 수 있는 내수시장 규모도 크지 않다. 꾸준한 연구개발로 반도체, 배터리 분야 세계 1위의 성과를 이룩했으나 지속적인 기술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급격한 기술변화 환경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주도 혁신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유로운 기술개발과 시장진입 환경에 따른 최첨단 기술혁신이 자발적으로 생산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주도 혁신이 아닌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경제사회적으로 보상받는 선진국형 혁신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지영 경제사회연구원 기술정책센터장·서울대학교 객원교수 jyp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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