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의 교수로 생활을 하다 보면 지방대학은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방대학은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 같이 학생 교육이나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전문가가 적다 보니 지방대 교수는 교육과 연구는 당연하고, 지역사회와 기업의 현안을 직접 해결해 주는 역할은 물론 지자체 정책수립 등 챙겨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션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지방대학의 글로벌화다.
2040년이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가 수도권 대학 채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급감하는 데 젊은 층의 대도시 선호 현상까지 더해져서 지방대학은 지역 자원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기 전에 지방대학은 혁신을 통해 국내외 우수 인력과 연구과제가 스스로 찾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정부 차원에서 정책화한 것이 교육부 글로컬대학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한두 가지 일은 남보다 잘할 수 있겠지만 여러가지를 잘하는 이른바 팔방미인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지방대학은 로컬 영역에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은 물론이고 교육과 연구에 있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팔방미인이 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의 글로벌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필자가 1년 반 전 지방 국립대 총장에 취임한 이후 이번 글로컬대학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늘 고민하는 과제였다.
최근 들어 나름의 실천전략을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지역사회와 밀접한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최고의 글로벌 연구와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리 대학이 지난 20년 간 서남권 지역산업의 특성에 맞춰 대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해양과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연구 인프라와 연구그룹을 육성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 최고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관행화된 국립대를 창조적으로 혁신하자는 것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지방대학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인구 소멸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잠깐이라도 대학혁신을 소홀히 하면 국립대조차도 신입생 충원율 등의 각종 지표가 재정지원 제한대학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고, 대학의 강도 높은 혁신이 수반되면 또다시 경쟁력이 살아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대학의 주인을 교수가 아닌 학생과 학부모로 삼고, 지방대학도 수도권 대학은 물론 해외 명문대학보다 더 훌륭한 교육시스템과 학생 생활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혁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실천전략은 대학 발전을 막고 있는 법적·제도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비단 대학의 나태함만이 아니고, 국회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제도적 혁신도 요구되고 있는데 여야의 극한대립 속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치적인 논리로 시작되어 16년째 동결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지방대학에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고, 고등교육에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재정이 어려운 대학을 살리고 대학의 적기 청산의 유인책을 마련해 퇴로 제공을 유도하는 사립학교 구조개선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임에도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것 등이 요즘 필자가 국회를 찾는 이유다.
지방대학이 없으면 지역에 청년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고, 지방대학의 위기는 인구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역의 공동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대학의 글로벌화는 대학 자체의 뼈를 깍는 혁신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학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고 대학의 혁신을 지원하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여야를 떠나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과제기도 하다.
지역에 청년인구 천 명을 정착시키기 위해 수백억의 재원을 투입하면서 청년 1만명이 교육받는 대학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투입하는 재정이 그에 못 미친다면 조금 이상한 사회같이 보이지 않는가.
송하철 국립목포대학교 총장 president@mok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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