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후변화와 청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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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최근 대한민국 청년과 관련해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그리 희망에 가득 차 있지 않은 느낌이다. 청년 자살율, 은둔형 고립, 미래를 저당 잡힌 영끌 투자, 부모 세대에 기댄 캥거루 등 우울한 단어가 넘쳐난다. 선거철에는 어김없이 청년·결혼·출산 지원 정책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청년세대의 고달픔은 경제통계로도 잘 나타난다. 20대 이하 세대의 가구 소득은 3114만원으로 60대 이상 세대 평균 가구 소득인 3189만원에 비해 낮다. 즉시 만족을 추구하지만 불안하고 여유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청년세대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아마도 불과 20여년 만에 고도성장에서 저성장 고착화의 시대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제·사회적 맥락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미지의 세계다. 필자는 이를 '백색 용지'라고 일컫고 싶다. 지금까지 인류는 앞선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의 운동장에서, 청년세대가 기회를 찾고 키우면서 성과와 결실을 수확해 왔다.

1차에서 4차에 이르는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모빌리티, 그리고 녹색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에서 우리나라는 반도체, 휴대폰, 배터리 등의 기회를 일궈왔다. 이 과정에서 후진국에서 중진국, 선진국이라는 성장의 사다리를 재빠르게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반복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과 함께 새로운 백색 용지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미·중간 패권 경쟁, 동유럽·중동의 전운, 자유무역 쇠퇴와 공급망의 무기화 등 너무나 생경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시대다.

이 중 전 지구 전체를 감싸며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른 가장 큰 백색용지는 단연 기후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 백색용지가 우리 청년들이 거대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청년들은 기후변화라는 백색 용지에서 어떤 기회를 찾아야만 할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우리의 성장 방정식은 유지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세상을 일구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1966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한강의 기적' 신화가 시작했다. 기적의 주인공은 화석연료가 근간이 된 석유화학, 제철산업, 경부고속도로 등일 것이다. 주인공 모두 현재 전 지구가 노력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큰 흐름의 기후변화 대응과 반대 방향에서 대한민국의 기적을 견인해 왔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탄소기반 경제성장의 모범답안'이 DNA 속에 각인된 기성세대는 백색용지가 백색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예전 가난했던 시절 한 끼의 곡물을 의미하는 '곡기'는 부모님 세대가 근면하게 일할 수 있게 한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이 영양공급원은 중장년층에게 당뇨병 등 대사증후군을 불러일으키며, 줄이고 조금 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탄소기반 성장이라는 지구의 대사증후군은 수소, 태양광, 풍력 등 영양 공급원의 다변화로 치유할 수 있다. 이 치유 과정을 대한민국 청년에게 거대한 기회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청년세대는 디지털 노마드로 태어나,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극복의 당위성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며 성장한 세대다. 하지만 그 길이 청년세대에게만 맡길 만큼 쉽지 않다. 이 길을 앞서 겪어온 기성세대가 청년이 지치지 않고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고 그 가운데서 기회를 찾아야 하는 청년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백지용지에 마음껏 꿈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자살률이 아니라 출생률이, 은둔형 고립이 아니라 참여형 연결이 넘실거리며, 미래가 아닌 젊음을 담보로 담대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의미도 모르는 한국어 가사를 전 세계인이 열심히 떼창하게 만든 우리 청년의 창발성과 잠재성이 기후변화라는 백색용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지구의 미래를 맡겨보자.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yisanghyup@nig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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