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의정 갈등 여파 산업계 '패닉'

전공의 집단사직이 본격화한 지 두 달 가까이 흐르면서 의료 산업 곳곳이 타격을 받고 있다. 환자 수 급감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는 대형병원은 비상경영 선언에 이어 희망퇴직까지 실시하고 있다. 이 여파는 제약·의료기기 산업까지 퍼져 매출 감소, 영업 위축, 임상시험 중단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대대적으로 시장 공략을 준비하던 의료IT 업계는 병원 투자 위축에 따라 사업 차질까지 우려한다. 주변 상권까지 암흑기에 빠지면서 의정 갈등으로 관련 산업계 모두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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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산업계 여파

◇하루 손실만 10억원…대형병원 '비상경영'

지난 2월 20일을 기점으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면서 주요 수련병원의 외래, 수술 환자는 평균 30~40% 급감했다. 이 영향으로 대형병원은 하루 평균 손실 규모가 10억원 이상에 이를 정도다.

실제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을 대상으로 경영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병원당 의료수입은 평균 84억7670만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코로나19 유행 시점처럼 진료비를 '가불' 형태로 미리 받고 경영 상황이 개선되면 갚는 건강보험 진료비 선지급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지방 사립대병원은 수도권 빅5와 같은 대형병원처럼 낮은 금리로 마이너스 대출을 받기 어려워 직원을 줄이거나 월급을 나눠 지급하는 등 자금 상황이 더 좋지 않다”면서 “결국 휴원하는 병원도 생길 가능성이 높은데, 그 피해는 환자는 물론 병원에 소속된 직원 전체가 입는다”고 우려했다.

병원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의료IT 기업들도 덩달아 초긴장 상태다. 병원이 대대적인 비용절감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올해 예정된 IT 예산 삭감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의료IT 업계는 대형병원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HIS) 구축사업부터 의료 인공지능(AI) 솔루션 도입 등 투자를 기대했다. 실제 부산대병원은 연내 차세대 사업을 추진하면서 관련 예산도 500억원 이상 검토했다. 하지만 병원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현재는 불투명하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병원 공급을 시작한 의료AI 솔루션 기업도 올해 대대적인 공급 확장을 기대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당서울대병원 등 IT 조직 혁신에 따른 인력 및 솔루션 도입, 대형병원의 행정 부문 챗GPT 도입 등 IT 투자도 예고됐지만 사실상 잠정 중단됐다.

의료 IT 업계 관계자는 “가장 규모가 컸던 대형병원 차세대 시스템 구축부터 고도화까지 다양한 프로젝트가 재검토에 들어갈 것”이라며 “여기에 보안, AI 등 솔루션 구축도 유보되면서 장기화될 경우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약·의료기기 업계도 타격…사업 전주기 악영향

병원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지면서 제약, 의료기기 업계도 타격이 크다. 병원은 대부분의 의료 제품 최종 소비자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 역할이 위축되다 보니 산업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대형병원은 일반적으로 의약품, 의료기기 등을 반기 혹은 분기별로 주문한다.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으로 당장 주문량이 크게 줄지는 않지만 2분기부터는 업체 실적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영역은 수액, 마취제, 진통제 등 입원·수술에 반드시 들어가는 필수 의약품이다. 당장 입원, 수술 환자가 30~40% 줄다 보니 비축 품목 소진도 늦어지고 신규 주문은 더더욱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항암제 등 고가 난치·희귀질환 치료제 판매 위축도 심각하다. 제약사 매출 상당 부분이 난치·희귀질환 치료제에서 나오는데, 환자들이 주로 치료받던 대형병원이 운영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의료기기 업계도 마찬가지다. 수술이 급감하면서 단가가 높은 수술용 로봇 등 의료기기 추가 도입, 교체 수요도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업계에선 수술용 도구 등 간단한 의료기기부터 대형 의료기기까지 전반적인 제품 발주량이 의정 갈등 전보다 최대 40%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의료기기 업체 대상 대금 지급시기를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하는 등 자금난 악화 여파까지 고스란히 받고 있다.

제품 판매뿐 아니라 제품 개발부터 영업·마케팅까지 사업 전 주기에 걸쳐 의정 갈등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대형병원이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제약·의료기기 업체들은 원내 방문 영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 병원에선 당분간 방문 영업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까지 한 상황이다. 제품 마케팅에 핵심 역할을 하던 심포지엄이나 학회 등도 연이어 중단하면서 채널까지 줄고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50일간 국내에서 승인된 임상시험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8% 줄었다. 임상시험을 수행하던 교수들이 전공의 공백을 메우면서 신규 임상시험 위축은 물론 기존 임상시험까지 대거 중단한 상태다. 산업계 미래 먹거리 발굴까지도 차질을 빚고 있다.

백선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본부장은 “신규 임상시험 승인은 20% 가까이 감소했지만 기존 임상시험은 물론 신규 논의하던 임상 중단까지 포함하면 그 여파는 더 클 것”이라며 “임상시험 연구자가 대부분 진료의사이기 때문에 현재 임상시험을 이어가기 어렵고, 결국 신제품 출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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