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AI반도체 '투키디데스의 함정', 생존이 아닌 선도전략으로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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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기원전 약 400년 경 고대 그리스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있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을 지중해 패권을 쥔 스파르타가 신흥 강자인 아테네를 견제하는 과정의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신구 세력 간 필연적 패권 대결을 두고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고 한다. 인공지능(AI) 시대 AI반도체 기술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글로벌 격전이 이와 유사하다. 이 함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거대 AI, AI반도체 혁신을 트리거

지난해 초 챗GPT에서부터 시작된 초거대 AI 돌풍이 거세다. 생성형 AI가 산업과 생활 곳곳에서 스며들며 AI 융합, AI 일상화 시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보검색은 물론이며, 반복·비효율적 작업 효율화를 넘어 저술·작곡·동영상 제작 등 창작활동까지 활용되고 있다.

이런 초거대 AI를 구동하는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이 AI반도체다. AI반도체는 데이터 학습·추론 핵심 연산기능을 담당한다. 방대한 데이터 처리에 빠르고 효율적 처리가 가능한 고성능 AI반도체가 필수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병렬 연산으로 대량 데이터를 동시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GPU는 전력 사용량 급증과 막대한 비용 증가를 야기한다. 챗GPT만으로도 하루 70만달러 이상 비용이 필요하다. 또 AI 모델은 매년 10배 이상 크기가 커지는데 GPU 성능개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문제 해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기존 틀을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반도체로의 혁신이 필요하다. 대규모 연산을 저전력 고효율 실행하는 지속 가능한 AI반도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AI반도체 혁신 방식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다기화될 수 있다. GPU와 같은 프로세서 혁신, 메모리 혁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연산과 메모리 모두 각자 빠르게 진화하며 초격차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프로세서 분야에서는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해 AI 연산에 최적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가 대표적이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메모리에 연산기능을 더한 프로세싱 인 메모리(PIM)가 있다. 우리는 AI반도체 가치사슬 전 영역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혁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AI반도체의 새로운 혁신 추동력, 온디바이스 AI

한편, 최근 기존 클라우드 기반 AI 서비스와 함께,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AI가 부상하고 있다. 올해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에서도 다양한 기기에 온디바이스 AI가 탑재돼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온디바이스 AI는 스마트폰·자동차·PC와 같은 기존 산업 고도화를 이끌고 있다. 또 웨어러블·로봇 등 신산업에도 적용 확대될 전망이다. 온디바이스 AI는 AI반도체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이런 온디바이스 AI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없이도 연산을 할 수 있어 저전력·저비용은 물론, 보안성과 실시간 서비스에도 유리하다. 데이터센터 AI 연산 부담을 줄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근간에는 경량화된 AI 모델과 온디바이스용 AI반도체가 있다. 따라서 AI 모델 경량화와 온디바이스용 AI반도체와 같은 핵심 경쟁력도 조기 확보해야 할 것이다.

◇기업發 3차 반도체 세계 대전

1980년대 미·일 반도체 대결, 1990년대 말 한·일·독·대만 등의 반도체 가격경쟁에 이어, 최근 AI가 쏘아 올린 반도체 3차 대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엔비디아·인텔·퀄컴 등 기존 반도체 강자는 범용 AI칩을 고도화해 시장을 확대 중이다. 이 중에서도 엔비디아가 압도적으로, GPU 시장 약 9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맞서 MS·구글·아마존·메타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는 자사 기기·서비스에 특화된 맞춤형 AI칩을 자체 개발하며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오픈AI는 천문학적인 자금조달, 메모리·파운드리·투자사 등과 전방위적 동맹을 모색하며 탈 엔비디아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엔비디아 대 비(非) 엔비디아 대결로 더 치닫는 형국이다.

이런 치열한 AI반도체 전장 속에서 우리만의 생존 전략이 요구되고, 나아가 격렬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를 넘어 과감한 '선도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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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메모리 경쟁력을 지렛대로 AI반도체 대도약 준비

우리나라는 불모지인 반도체 분야에 뛰어들어 불과 10년 만인 1983년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또 한 번 10년이 흘러 1992년엔 마침내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 개발해 지금까지 세계 메모리 1위를 수성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최초로 고속 데이터 처리를 위한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개발해 세계 1위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고 메모리 경쟁력을 바탕으로 AI반도체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 이미 우리 기업들은 선제 투자로 성장 잠재력을 입증하고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사피온, 리벨리온, 퓨리오사, 딥엑스 등 기업도 자체 칩을 상용화하며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AI·디지털 시대, 대한민국 미래가 AI반도체에 달려 있다. 치열한 글로벌 AI 전장에서 승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 반도체 미래를 담보하는 연구개발(R&D)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 AI반도체 가치사슬 간 연계·성장을 지원해 산업 기반을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또 AI반도체 산업을 이끌 혁신 인재를 양성하며 미래 준비에도 힘써야 한다.

AI반도체는 아직 초기시장으로 지금이 핵심 경쟁력을 갖춰 미래를 준비할 최적기다. 격화되는 반도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 글로벌 AI반도체를 주도하려면 모두의 치열한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가 가진 반도체칩 제조 기반과 혁신적인 신규 업체들의 에너지, 선도적 지능형반도체 R&D, K클라우드 등 체계적인 수요 연계로 세계 AI반도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길 기대한다.

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장

〈필자〉 홍진배 IITP 원장은 1996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통신정책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 네트워크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지난 2월 IITP 원장으로 부임, ICT R&D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1999년에는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후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표창,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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