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차이나커머스를 제재하기 위한 명분으로 e커머스 실태조사를 진행중인 가운데, 업계에서 e커머스만 규제하는 차별 대우인대다 플랫폼법을 재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이번 조사가 '플랫폼법과는 완전 별개의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실태조사라는 명분 아래 다시 국내 e커머스 업계에 옥상옥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공정위가 국내와 미국 플랫폼 기업들의 반대로 무산된 플랫폼경쟁촉진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밑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특히 공정위에서 이번 실태조사를 담당하는 부서는 카르텔조사국의 경제분석과인데, 이를 두고 공정위가 e커머스 시장에 대해 이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고 답을 정해놓고 조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공정위의 이번 실태조사는 최근 공정위의 결정과도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작년 말 CJ올리브영 사건에서 CJ올리브영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지 불확실하다고 판단한바 있다. 그 근거로 '근래에는 오프라인 판매채널과 온라인 판매채널 간 경쟁구도가 강화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라며 관련 시장이 온·오프라인으로 확장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당시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소비자 구매행태가 매장에서 보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등 온·오프라인이 점차 융합돼가는 추세”라면서 “그간 공정위가 사건 조사나 심의 과정에서 온·오프라인 시장을 나눠서 봐왔다면, 이제는 좀 더 유연하게 볼 필요가 있다”라고 확장된 시장 획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업계는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경계가 사라지고 확장된 시장의 현실을 공정위가 수용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이번 공정위의 실태조사는 위 결정으로부터 채 4개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번복해 버린 것과 다름없다.
CJ 올리브영 사건 결정을 통해 온·오프라인이 융합되고 채널이 다변화된 유통 시장의 현실을 반영했는데, 규제를 위해 다시 시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며 시류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쇼핑 활성화와 코로나 이후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온·오프라인 경계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공정위의 행보에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공정위가 유통시장을 온·오프라인에서 e커머스로 자의적으로 변경하고 국내 e커머스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라며 “국내외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알리, 테무 등 중국 업체들에 대해 얼마나 실효성 있는 실태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업계 주장에 대해 공정위는 이번 실태조사가 플랫폼과는 전혀 무관한 별개의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번 e커머스 실태조사는 공정위에서 새롭게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시장분석 연구라고 설명했다. 또 올리브영 건의 시장획정과 e커머스 시장분석은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간 경쟁구도나 보완서 등도 살피며 분석하겠다는 의미가 담겼고, 온라인 업체들만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한편, 최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개최한 '중국 직구 플랫폼 급성장의 영향과 대응' 세미나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섣부른 플랫폼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보다는 국내 플랫폼에 대한 지원책을 늘려 경쟁력을 키우고, 중국 플랫폼들이 소비자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