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국가대항전 준비 돼 있나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에서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으로 60억달러(약 8조원)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최근 복수 소식통을 인용, 미 정부가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이같은 보조금을 지급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은 핵심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반도체 보조금(390억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달러) 등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5조5000억원)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이지만 삼성은 미 투자에 대한 보상으로 상당한 금액을 지원 받을 것으로 보인다. 거론되는 60억달러는 삼성전자가 기존 발표한 미국 투자 규모(170억달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애리조나주 반도체 공장에 4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TSMC 예상 보조금(50억달러)보다 많다.

늘어난 보조금은 테일러 공장 건설비 상승과 삼성의 추가 투자 계획이 반영된 결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서는 더 많은 자국 내 투자를 이끌어 냈기 때문에 보조금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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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미국 테일러 팹 건설 현장

우리 기업이 차별 받지 않고, 투자에 걸맞는 금액을 지원 받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 유치를 보면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자금과 인력, 기술 이전으로 받게 될 국내 영향이다.

미국에는 인텔, AMD, 엔비디아, 애플, 테슬라 같은 세계적 반도체 설계 회사(팹리스)가 많다. 미국 내 공장이 있으면 이런 굵직한 반도체 고객 확보에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지화가 늘어날 수록 한국 내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세계 각국은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중국, 유럽, 일본은 물론 인도도 수십조원의 자금을 풀어 유수 기업 유치·산업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유가 넘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지원은 세액공제와 행정편의 정도에 머물고 있다. 대기업 투자에 대한 법인세 공제를 8%에서 15%로 늘린 K칩스법마저 올해 말 시효가 끝난다. 해외 투자 유치는 고사하고, 국내 기업 이탈도 막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는 아직 갈 길이 먼 데, 메모리는 후발주자에 따라 잡히고 있다. 경쟁국 못지 않은 지원과 혜택, 그리고 획기적인 규제 혁파가 없으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