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입법·정책 설계오류 등
각계 모임서 작심 비판 쏟아져
시장경쟁·산업성장 저해 강조
정부 “독과점 속 악의 도려내야”
소통 강화·통상문제 비화 차단
행정규제 전문가와 소비자단체, 스타트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에 대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급한 플랫폼법 입법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무리한 입법시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규제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플랫폼과 스타트업 투자·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지역정보화학회가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제 쟁점 진단' 세미나에서는 “(공정위가) 현행법 자체가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이 만들어질 정도로 문제가 많았나에 대해 조망해야 한다”면서 “현행 법의 한계를 실증 분석으로 보여준 다음에 안 된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최근 플랫폼법 입법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성급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특히 공정위가 플랫폼법을 성급하게 입법할 때에는 법안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 교수는 “규제 의지와 달리 실질적으로 어떻게 규제해왔는지 규제의 속도와 실질 집행으로 이뤄졌는지가 중요하다”면서 “구글이나 미국 플랫폼 시장에 대해서는 하겠지만 규제 속도 때문에 국내 플랫폼 사업이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건 한신대 공공인재빅데이터융합학과 교수는“정부의 규제 의지와는 다르게 집행 어려움 때문에 사실상 역차별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원 안동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정위가 독과점 시장 기준을 명확히 하면 될 문제이지 사전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법에서 정해진대로 서비스하는 것 자체가 신규 서비스 제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학계는 공정위의 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디지털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플랫폼 규제는 시장 경쟁과 산업 성장을 모두 저해한다며 도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날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개최한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 토론회에서 10년간 국내 플랫폼 규제 경과를 짚으며 공정위가 벤치마킹하는 유럽연합(EU) 디지털시장법(DMA)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자율규제 모델을 채택한 지 근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력한 플랫폼 규제를 추진하는 것은 국내 시장환경조차 고려하지 않은 정책 설계의 오류”라면서 “국가 산업 정책은 최소 10년은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플랫폼 법안의 다섯가지 원칙도 제안했다. △사전규제 지양 △글로벌 경쟁력 증진 △협력적 거버넌스 설계 △이용자 후생 증진 △적극적 자율규제 등이다.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사전 규제 방식의 한계를 짚고 온라인 시장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온라인 시장은 기술 발전과 소비자 요구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디지털 분야는 일률적으로 범위를 확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면서 “이에 따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전 규제 방식은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단체는 플랫폼법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플랫폼 기업의 상품·서비스가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으로 규제 받는다면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제한돼 소비자 후생을 떨어트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경쟁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경쟁을 강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형석 한국소비자법학회장은 플랫폼법 제정 대신 현행법 개정이 효율적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시급한 것은 특별법 제정이 아닌 전자상거래 등에서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전부 개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반면 정부는 이날 플랫폼법 도입 취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법안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박설민 공정위 디지털경쟁정책과장은 “플랫폼법은 독과점을 규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과점 속에 숨어있는 악의를 도려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기 산업부 유통물류과장은 “관계 부처 협의가 마무리 되는 대로 법안 공개 이전에 공정위와 사업자간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알리익스프레스 등 통상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부처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