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칼럼] 콜앤드래그(call and dr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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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커머스기업 11번가가 투자자에 의해 매각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2018년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로부터 2023년 9월까지 IPO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50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계약서에는 예정대로 상장을 못하면 SK스퀘어가 투자자들의 주식을 되 사주겠다는 콜옵션과 만약 SK가 주식을 사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임의로 회사를 제3자에게 매각해도 좋다는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을 약속한 기한을 넘겼고, 모기업인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면서 투자유치 당시 약속대로 투자자가 주도적으로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SK는 손절하는 수순에 들어갔으며,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대신 회사를 직접 매각해 투자금을 알아서 챙겨가라고 선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피투자기업과의 합의한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주식을 되 팔 수 있는 풋옵션을 포함시킨다. 풋옵션을 행사하면 투자 받은 기업은 반드시 주식을 다시 인수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11번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성이 있는 대기업의 계열사라 상장이 지연되거나 어려워지면 당연히 투자자의 주식을 되 사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강제로 주식을 파는 풋옵션 대신에 자진해서 주식을 되 사가겠다는 콜옵션을 계약조건으로 한 것이다. 또 풋옵션이 있으면 투자금이 자본이 아닌 부채로 계상되기 때문에 SK의 편의를 봐 준 것이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강제로 회사를 매각한다는 드래그얼롱이 포함됐다. 이런 투자조건을 콜앤드래그(Call and Drag)라 한다.

콜앤드래그 조건은 통상 콜옵션을 반드시 행사해 최대주주 역할을 다하고 투자자에게는 절대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경영을 하면서 실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쉽게 계열사의 경영권과 임직원도 포기할 거란 상상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하며 최근 5년동안 엄청나게 그룹을 확장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 계열사는 전년 대비 12개 늘어난 198개로 집계됐다. 2010년 75개, 2015년 82개, 2020년 125개 등 꾸준히 늘어났으며, 특히 2021년 148개, 2022년 186개, 2023년 198개로 급증했다. 문제는 이런 급격한 확장이 자체자금이 아니라 상당부분 외부 자금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웨이브, SK 온, SK E&S, SK 엔무브, SK 에코플랜트, SK 팜테코, 원스토어 등에도 11번가와 비슷한 형태로 수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조달됐다. 그런데 이렇게 외부 투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SK그룹이 자본시장에 친화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제 투자자들은 계약대로 회사를 매각해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SK를 믿고 투자한 국민연금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 됐다. 앞으로 국민연금 등 '큰손'들의 SK 계열사 딜을 기피하는 심리가 강해질 것이며, 투자시장에서 콜앤드래그 구조는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커졌다. 또 이미 콜앤드래그 조항이 들어간 투자는 조속히 엑시트하려는 압박이 강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SK 정도 되는 대기업에 투자해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선례는 가뜩이나 어려운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는 스타트업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투자를 받기도 더 어려워지고 조건도 훨씬 까다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들에게 가야 할 투자금이 대기업의 계열사를 늘리는데 흘러갔다고 볼 수도 있다. 스타트업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자 미래다. 대기업의 무모한 욕심과 잘못된 선택이 미래 꿈나무들의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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