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기가 현대자동차그룹 1차 협력사가 됐다. 1차 협력사는 자동차에 필요한 기술·부품을 완성차 업체와 개발하고, 직접 납품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회사다. 삼성전기 전장 기술이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 받은 것으로, 전장 사업 확대와 성장이 주목된다. 또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삼성전기까지 현대자동차와 협력 관계를 맺어 국내 대표 그룹 간 공조가 넓고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기는 9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1차 협력사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그 시작으로 차량 주변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서라운드뷰모니터(SVM)'용 카메라와 자동차 뒤쪽을 보는 '후방 모니터'용 카메라 등 2종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적용 차종은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기는 렌즈 접합 부분에 특수 공법을 적용해 불필요한 빛 유입을 차단한 카메라가 공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전자에게 중요한 시인성과 안전성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는 '발수' 성능 유지 시간을 기존 출시 제품보다 약 1.5배 긴 약 2000시간 이상으로 늘려, 업계 최고 성능을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기가 자동차용 카메라를 현대기아차에 공급한 게 처음은 아니다. 삼성전기는 현대기아 등 전통의 자동차 업체뿐만 아니라 테슬라 등 신흥 전기차 업체에 전장 부품을 납품해왔다.
달라진 건 1차 협력사로서 위상 변화다. 그동안은 현대모비스와 같은 곳을 통해 간접적으로 완성차 업체와 거래했다면 이제는 현대·기아차에 직접 납품하게 된 것이다.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의 위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유통 과정이 줄어들며 생기는 수익성 강화 효과 외에도 완성차가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 도입하려 할 때도 우선 협력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업 연속성을 확보하고 성장을 추진하는데 유리하다.
현대차의 삼성전기 1차 협력사 선정은 자동차에서 갈수록 '카메라'가 중요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카메라는 자동차 주위 장애물을 살피거나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용도에 그치고 있지만 자율주행시대 카메라는 자동차의 눈, 즉 자율차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또 운전자의 졸음이나 차량 내 탑승자를 모니터링하는 중요 기능도 예상되기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핵심 카메라 기술을 보유한 삼성전기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장 사업을 육성한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의 전략도 주효했다. 장 사장은 올초 주주총회에서 “전기차·자율주행이 삼성전기에 있어서 기회 요인”이라며 “전장이라는 성장 파도에 올라타 자동차 부품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조직개편을 통해 전장 사업담당팀을 꾸리며 전장 사업 강화에 시동을 걸었다.
장덕현 삼성전기 시장은 “이번 현대·기아의 1차 협력사 선정을 통해 전장용 시장에서의 제품 경쟁력을 입증했다”며 “렌즈 설계 기술 및 제조 내재화 등 IT용 카메라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첨단 전장용 카메라 라인업을 구축하고 생산능력을 강화해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협력은 또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간 접점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나와 눈길을 끈다. 삼성전기에 앞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현대차 차세대 전략 자동차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공급하기로 했다. 제네시스 브랜드 차세대 전기차가 적용 대상으로, 삼성과 현대차가 그간 소원했던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두텁게 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 그룹은 고(故) 이병철·정주영 회장 시절부터 재계 라이벌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사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삼성이 1995년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양사 주력 사업이 전자와 자동차로 재편, 첨단 산업 분야에서 실리를 챙기는 게 중요해지면서 변화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첨단 전자 기술을 보유한 삼성과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를 향하고 있는 현대차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협력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5월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단독 회동을 갖고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