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풍부한 탄화수소를 원료로 항생제를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노도영)은 장석복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KAIST 화학과 특훈교수) 연구팀이 경제적인 니켈 기반 촉매로 탄화수소로부터 '카이랄 베타-락탐'을 합성하는 화학반응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베타-락탐은 탄소 원자 3개와 질소 원자 1개로 이뤄진 고리 구조(4원환 구조)로 페니실린, 카바페넴, 세팔렉신 등 주요 항생제 골격이다.
베타-락탐 합성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베타-락탐은 카이랄성(거울상 이성질성)을 지닐 수 있는데, 구성 원소 종류나 개수가 같아도 완전히 다른 성질을 내는 두 유형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존재한다.
카이랄성은 분자식은 같지만 다른 물리, 화학, 광학적 성질을 갖는 특징이다. 한쪽 유형은 유용해도 이성질체는 독약이 될 수 있다.
시판 중인 베타-락탐 의약품 대부분은 유용성을 가진 유형만 선택적으로 제조하기 위해 카이랄 보조제를 추가로 장착한다.
이 경우 합성 단계가 복잡해지고, 제조 단가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보조제 제거에 추가로 화학물질을 투입해야 해 폐기물이 발생한다.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9년 탄화수소로부터 합성 가능한 다이옥사졸론과 새로 개발한 촉매를 이용해 카이랄 감마-락탐 합성에 성공했다. 당시 5원환 구조인 감마-락탐은 카이랄 선택적으로 합성했지만, 4원환 구조 베타-락탐을 합성하지는 못했다. 또, 이 반응을 위해 값비싼 이리듐 촉매를 써야 한다는 한계도 있었다.
베타-락탐은 감마-락탐보다 더 쓰임이 많지만, 합성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제조가 까다롭다. 이번 연구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풍부한 니켈 촉매를 이용해 베타-락탐을 카이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시판 공정에서는 항생제 합성에 필요한 베타-락탐 원료를 8단계에 거쳐 합성했지만, 연구진이 제시한 촉매반응은 보조제 장착 및 제거 과정이 필요 없어 약 3단계 정도로 절차를 단축할 수 있다. 게다가, 원료물질 대비 합성 물질은 시장 가치가 700배가량 높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서상원 전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차세대 연구리더(현 DGIST 화학물리학과 교수)는 “니켈과 다이옥사졸론 반응 과정에서 생기는 니켈-아미도 중간체가 베타 위치 탄소와 선택적으로 반응해 원하는 베타-락탐 골격을 얻을 수 있다”며 “두 유형의 카이랄 베타-락탐 중 한쪽만을 95% 이상 정확도로 골라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진은 천연물 등 복잡한 화학 구조 물질에 베타-락탐 골격을 높은 정확도로 도입하는 데도 성공했다. 기존 의약품 합성 전략보다 간단하게 후보 약물이 될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장석복 단장은 “페니실린, 카바페넴과 같은 주요 항생제의 골격인 카이랄 베타-락탐을 손쉽게 합성해냈다”며 “유용 물질의 합성과정을 간소화해 산업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신약 개발을 위한 다양한 후보물질 발굴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25일(한국시간) 화학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카탈리시스' 온라인판에 실렸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