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땅속에 CO₂ 수만톤 저장…탄소중립 '기회의 땅'

호주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
폐가스전·대염수층 기체 유출 막아
2004년부터 3단계 실증과정 순조
글로벌 연구진, 기술 안정성 고도화
韓, 화석연료 수입 대응 당면과제
대규모 저장소 확보·기술개발 시급

Photo Image
폴 바라클로프 CO2CRC 최고운영책임자(COO)가 15일(현지시간) 호주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에서 CO₂가스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 여러분이 밟고 있는 땅 아래 수만 톤의 이산화탄소(CO₂)가 저장돼 있습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차로 3시간쯤 달려 도착한 오트웨이 국제 탄소포집·저장(CCS) 실증센터. 폴 바라클로프 CO2CRC 최고운영책임자(COO)는 CCS 실증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CO₂ 저장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호주 국책 연구기관인 CO2CRC가 2004년부터 운영 중인 이곳은 4.5㎢ 면적의 광활한 초원을 무대로 CCS 실증을 진행 중이다. 현존하는 실증 사이트 중 최대 규모로 호주 정부 산하기관 및 대학 연구소를 비롯해 글로벌 에너지 기관에서 나온 다국적 연구원이 CCS 기술 안정성을 고도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지층에 갇힌 CO₂, 영구 격리

호주 정부가 오트웨이를 실증지로 낙점한 것은 CCS 연구의 최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호주 최대 자원개발 업체 산토스가 이곳에서 가스전 탐사에 나섰고 그 결과 매장 가스에 CO₂가 80% 이상 포함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산토스가 포기한 가스전은 CO₂ 포집의 최적지가 됐다. CO₂를 저장할 수 있는 폐가스전, 대염수층 또한 모두 존재했다. 폐가스전과 대염수층은 기체가 상부로 이동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덮개층이 있기 때문에 CO₂ 또한 유출되지 않는다.

2004년부터 시작한 실증은 현재 3단계를 지났다. 폐가스전을 대상으로 진행한 1단계에선 총 6만5000톤의 CO₂를 묻었다. 2단계에선 대염수층에 1만5000톤을 저장했다. CO₂를 기체, 액체의 경계인 초임계 유체 상태로 각각 지하 1.5㎞ 및 2㎞의 폐가스전과 대염수층에 주입했고 물에 용해된 CO₂가 지층의 공극에 안정한 상태로 저장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저장된 CO₂는 시간이 흐르면 탄산칼슘으로 변한다. 광석화하는데 수백만년이 걸리긴 하지만 CO₂를 영구격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CCS가 꼽히는 이유다.

3단계에선 모니터링 방법을 고도화했다. 센서 역할을 하는 지오폰을 광섬유 기반 음향 감지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지층에 주입한 CO₂의 움직임을 3차원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고 25일이 걸리던 모니터링 주기가 3일로 단축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초기부터 연구에 참여해 모니터링 방법, CO₂ 확산 속도 개선 등 과제에서 역할을 수행했다.

바라클로프 COO는 “최초 CO₂를 주입한 것은 2008년으로 지금까지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고 안전하게 저장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가스전이나 대염수층은 수만년동안의 지진 등에서 견딘 지층으로 CO₂의 저장 안정성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Photo Image
호주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 내에 위치한 CO₂ 주입정 설비.

◇세계가 주목하는 CCS

오트웨이 실증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호주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호주는 2022년 기준 약 162Bcm(Billion Cubic Meter, 약 1억 2300만톤)의 천연가스를 생산, 이 중 70%를 수출했다. 천연가스 생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CO₂가 발생한다. 호주에게 CCS는 국부의 원천인 화석연료 수출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지난해 5월 집권에 성공한 호주 노동당은 CCS 산업 활성화를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방안으로 보고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원활한 '국가간 CO₂ 이송'을 위한 국제협약 비준을 위한 관련 법안을 하원을 거쳐 상원에 상정했으며 승인을 앞뒀다. 해외에서 발생한 CO₂를 들여와 저장하는 사업을 상용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각국 기업, 연구기관도 걸음을 맞추고 있다. 미국 셰브론은 오트웨이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1600만 호주달러를 투자 예정이다. CO2CRC 역시 약 4000만 호주달러 규모의 외부 펀딩을 계획중이다. 엑손모빌, 쉘, BP 등 글로벌 오일·가스 기업이 CO2CRC와 협업에 나섰다. 지난해 2월 CO2CRC는 SK E&S를 비롯해 한국 K-CCUS추진단, 한국무역보험공사와 CCS 사업 협력 관련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CCS, 탄소중립 필수기술...저장 잠재력 확보는 숙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 글로벌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CCS기술이 없다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CCS 기술 기여도는 총 감축량의 18% 수준으로 제시했다. 단일 기술로는 탄소감축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수치다.

유엔 산하 '기후위기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도 지난 3월 'CCS 기술의 적극 활용'을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재 세계에서 상업 운영중인 CCS 프로젝트는 30여개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계획된 사업을 모두 합치면 총 CO₂ 처리 용량은 2억 4400만 톤에 이른다. 신규 개발 중인 CCS 프로젝트도 160여개를 넘어섰으며 평균 CO₂ 주입량도 지속 증가해 최근 3년간 연 1000만톤 이상의 대규모 프로젝트 운영 계획이 연이어 발표됐다.

Photo Image
오트웨이 CCS 실증 개념도. 사진 제공 C02CRC

박용찬 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신재생에너지 만으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고 화석연료 또한 사용을 완전히 규제할 수 없다”면서 “CCS를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각국이 경제성과 상용 사이트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을 통해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안에서 CCUS 기술을 활용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기존 1030만 톤보다 많은 1120만 톤으로 상향했다. 제조업이 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탄소 저감과 동시에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CCS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화석연료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 상황을 봐도 CCS는 당면 과제다. 세계 각국이 화석연료 수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CO₂ 처리를 의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는 이미 해당 규제를 법제화했다. 호주에서 유가스전을 수입, 개발하는 우리 기업은 당장 CO₂ 처리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규모 저장소 확보 또한 시급한 과제다. 그동안 국내 CCS 기술은 주로 석탄화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하는 데 집중됐다. 우리나라는 2017년 세계에서 세번째로 탄소 저장기술의 해상 실증에 성공하는 등 기술 수준이 올라와 있으나 국가 NDC 목표 달성에 필요한 수준의 대규모 저장소 확보 노력은 미진하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주요국이 CCS 기술 개발과 CO₂ 저장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CO₂ 운송 관련 법률이나 제도 관련 협의를 서둘러야 한다”며 “동남아, 호주 등 아태 지역에 저장소를 확보하게 되면 운송 거리 감소로 CCS 사업의 경제성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오트웨이=최호 기자 snoop@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