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희극'이라는 용어가 있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Eliner Ostrom)의 이론이다. 지식이나 정보화 같은 특수한 재화는 사람들이 공유할수록 더 가치가 높아지고, 공유자원 문제의 해결은 정부나 민간의 개별적인 노력보다 공유지 구성원들의 공동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제조업은 국제공조체제의 붕괴, 규제만능주의 확산, 자국 중심 리쇼어링(본국 회귀),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대전환 시대에 구조적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제조업 최대 집적지로 제조업 생산과 수출의 63%, 고용 48%를 차지하는 산업단지도 같은 위기를 맞고 있다.
산업단지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기업만을 위한 생산공간이 아니다. 기업과 근로자, 지방자치단체, 지원기관, 시민 등 모두가 관련된 공간으로서, 과거 농경시대 목초지와 같은 산업 공유지다. 따라서 엘리너 오스트롬의 주장처럼 구성 요소간 시너지를 일으켜 협업하면 할수록 경제적 가치가 커지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공유지의 희극'을 실제로 달성할 수 있다.
산업단지가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과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천지역의 부평, 주안, 남동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우리나라 산업단지는 노후화 등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뿌리산업을 중심으로 한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하락, 청년 인재의 비선호와 회피, 새로운 신산업 창출 미흡 등 세 가지 문제가 가장 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 지자체 등 기관들은 큰 노력을 기울였다. 주력 제조업의 고도화를 위한 디지털 전환(DX)과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 전환(GX) 사업과 청년이 찾아올 수 있도록 지식산업센터 건립, 정주 여건 개선과 편의시설 확충 등 구조 고도화 사업을 추진했다. 또, 휴폐업 공장을 리모델링해 창업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스타트업의 시제품과 양산품 제조, 펀드 조성 등을 지원하는 기업간거래(B2B) 제조거래센터 사업에도 나섰다.
하지만 인천지역 산업단지는 17개다. 입주기업은 1만4000여개에 달한다. 전체 산업단지와 기업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기업 스스로의 변화와 참여가 필요하다.
우선, 산업단지를 자신의 공장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공유지 비극' 시각에서 입주기업 모두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공유지 희극'의 시각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단공 인천지역본부는 산업단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인천시와 협력해 남동산단을 대상으로 '아이-라이팅'(I-Lightin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야간 근무 시 어두워 밤길이 위험하고, 근로자들이 꺼리는 탓에 신규 채용이 어렵다는 기업 애로를 해소하는 게 핵심이다. 산단공과 기업이 서로 예산을 분담해 기업 입구와 건물에 경관조명등을 설치하고 산업단지와 이어지는 교량도 밝게 한다.
해당 사업은 7개 기업을 시작으로 점차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밝아진 경관을 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조명 시설을 달고, 인식을 전환하는 다양한 생각들이 모이면 산업단지 전체가 바뀌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산업단지는 기업이나 근로자, 국가, 지자체만이 아닌 지역 내 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산업단지의 가치를 함께 누리는 것은 물론 문제 해결 방식에서도 기업과 근로자, 지원기관들의 노력을 합해 공유지의 희극을 실현하는 '혁신 공유지'가 돼야 한다. 이제는 산업단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쓸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혁신 공유지'에서 개별 기업과 지역 경쟁력, 국가 경제 성장을 함께 만들기를 기대한다.
박성길 한국산업단지공단 인천지역본부장 psgil@kicox.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