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네트워크 기술로 꼽히는 오픈랜(개방형 무선접속망)을 바라보는 국내 이동통신사 심경이 복잡·미묘하다. 최근 열린 오픈랜 행사에서 한 이통사 임원은 “국내는 이미 5G 커버리지가 높아 해외 대비 오픈랜 확산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로선 오픈랜으로 총소유비용(TCO)이 줄어든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국내 중소 제조사가 해외로 오픈랜 기술 판로를 넓힐 수 있도록 레퍼런스를 만들어주는 마중물 역할은 하겠지만, 기존 5G 기지국에 오픈랜 장비를 새로 설치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5G 통신망 구축이 상당수 완료된 상황에서 오픈랜 방식으로 바꿀 필요성이 적기 때문이다.
오픈랜은 무선 기지국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 장비를 분리해 서로 다른 제조사 장비 간 상호 연동이 가능하도록 한 기술이다. 네트워크 가상화를 통해 어떤 기업이 만든 장비를 쓰든 SW만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 된다. 네트워크 코어를 클라우드에 구축, 설비 투자 규모를 최소화하면서 기지국 구축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셈이다.
비용과 시간을 줄여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건 기존 사업자가 아닌 신규 사업자다. 이미 충분한 5G 기지국 인프라가 구축된 상황에서 오픈랜을 구축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오픈랜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네트워크를 넓히는 쪽이 유리하다. 이통사 입장에선 가야할 길인 것은 알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통신경쟁 활성화 측면과 국내 중소 장비업체 글로벌 진출을 위해 오픈랜 생태계 구축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이통사 진입이 있으려면 오픈랜 상용화가 전제돼야 한다. 일본 라쿠텐과 미국 디쉬네트워크 사례가 대표적이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이들은 오픈랜 기술을 활용해 망 구축 비용을 줄이고 네트워크를 유연화하며 시장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라쿠텐모바일이 세운 전략은 클라우드 기반 오픈랜 가상화 기지국을 활용해 롱텀에볼루션(LTE)용 인프라를 5G로 전환하는 것이다. LTE 장비와 5G 장비를 따로 구축할 필요가 없어 설비 투자비용을 40%가량 절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쌓은 가상화 네트워크 기술과 솔루션을 독일, 싱가포르 등에 수출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도 만들어냈다.
국내도 경쟁 활성화 측면에서 오픈랜 생태계 구축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단순 장비 제조사간 경쟁뿐 아니라 통신사업 전체에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정부는 민관협의체 구축뿐 아니라 오픈랜 도입시 세제 혜택 지원 등 보다 적극적인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통사 역시 5G를 넘어 기지국을 더 촘촘히 설치해야 하는 6G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오픈랜 기술 도입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