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기술·아이디어 탈취 방지, 갈길이 멀다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가 3배에서 5배로 늘어나도 대기업이 부담을 느낄 금액인지 의문이 듭니다. 기술탈취 행위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기업과 기술·아이디어 탈취 분쟁을 겪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의 중소기업 기술보호 지원 강화 방안을 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혁신 스타트업 대상 기술 탈취 모니터링 지원,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범부처 기술보호 게이트웨이 구축 등 기술 분쟁 전주기에 대한 연결적 지원과 공조체계 마련이 담겼다. 2021년 기준 중소기업의 기술보호역량이 대기업의 56.7%에 불과한 현실에서 정부가 기술분쟁을 혁신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하고, 공정시스템 구축에 나선 점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갈 길이 멀다. 기술 탈취 입증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아이디어 탈취 피해 기업에 따르면 대기업은 기술탈취 의혹을 받으면 해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거나 내부에서 준비하던 사업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대응 논리를 이미 마련한 것이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을 탈취하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시킬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게 지분투자, 사업 협력을 위한 논의과정에서 기술 자료 등을 요구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기술탈취 피해를 입어도 입증이 쉽지 않고, 향후 거래 관계를 감안해야 하다보니 문제제기조차 포기하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하 구도가 고착화되면, 기술 도용 사례는 앞으로도 근절될 수 없다.

재단법인 경청과 기술 탈취 피해 스타트업은 아이디어와 성과물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신설을 요구한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법에는 아이디어 침해, 데이터 부정사용, 성과물 침해는 형사처벌 규정에서 제외돼 있다. 입증 자체도 어려운데 형사처벌에도 예외이니, 기술·아이디어 탈취가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중기부의 기술보호 지원 방안은 중소기업·스타트업 기술 탈취 예방·대응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서 더 나가가야 한다. 형사처벌 규정 신설과 부정경쟁 행위 유형 확대 등 기술 탈취 행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특허청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술 도용 등 부정경쟁행위는 39만여건 발생했고, 피해규모는 무려 44조원에 달한다. 숫자보다 안타까운 것은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스타트업이 기술력이 아닌 대기업과 분쟁으로 주목받는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스타트업의 핵심기술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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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섭 기자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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