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27〉교육자치 30년,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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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순천향대 평생교육학부 교수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해 언급하자 교육계가 떠들썩하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시험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단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1993년부터 도입한 수능시험은 당초 고교의 모든 과목을 암기식으로 공부하던 폐단을 없애고 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고자 도입한 것이다. 시행 30년이 지나면서 수능시험의 여러 가지 폐단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험이 지나치게 짧은 시간에 학생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다보니 시험에 얼마나 익숙한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수, 삼수생들이 더 점수가 잘 나오다보니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웃지못할 해프닝 같은 일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아프다.

수능이 도입되기 직전인 19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우리나라에 교육자치제가 도입됐다. 교육자치제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지방분권 원칙 아래 도입한 제도다. 지금과 같이 학교교육은 마치 수능만 잘 치르면 되는 것처럼 방향성을 잃은 상황에서 지방교육자치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도입한 수능시험과 지방교육자치제의 성과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교육자치제에서 시도교육감은 지방교육의 발전을 책임지고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교육을 실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지방교육의 수장(首長)이다. 교육감은 그동안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대책을 내놓았는지 의문이다. 지역 특색을 살리는 교육을 통해 학생을 유치하고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인구감소 문제가 단위학교나 지자체만의 노력으로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와 같이 수능위주 학교교육 체계에서 과연 시도교육감은 지역마다 특색있는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였는지 되묻고 싶다. 매년 시도교육청에 지원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모두 사용하지 못해 수조원씩 반납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감의 역할 가운데 평생교육에 관한 내용도 있으나 이미 학교는 울타리로 보호하는 비무장지대 같은 공간이 되었다. 학교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거나 시설을 공유하는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다. 일부 학교가 주차장이나 체육시설 등을 마을 주민에게 개방하는 등 점차 학교시설을 공유하는 학교가 늘고 있으나 아직 많은 학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는 주민에게 중요한 학습자원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학교의 공간은 학령기 학생뿐만 아니라 주민의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평생교육법’ 개정으로 2024년부터 시장, 군수, 구청장은 모든 읍·면·동에 평생학습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현재도 주민자치센터에 평생학습센터를 설치한 지자체가 적지 않다. 이러한 학습공간을 학교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간만이 아니라 학교의 역할도 변화해야 한다. 2022년 기준 전국에 42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령기에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르신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청소년이 여기에서 배움의 꿈을 펼치고 있다. 평생교육시설은 국공립이 아닌 민간이 운영하며 운영비 일부를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도교육청마다 지원하는 기준이 다르고 지원액도 차이가 많다.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은 정규 학교를 학령기에 다니는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쳤더라도 언제라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로 헌법에 명시돼 있다. 이러한 국가의 책무를 집행하는 기관이 시도교육청이다. 그래서 법에서 시도교육감의 역할에 평생교육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이 학교 대신 담당하고 있는 지역사회교육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민대상 문해교육과 평생교육에 시도교육청은 뒷전이다. 시도지사나 시군구청장만 관심이 있는 듯 하다.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지역의 특색을 무의미하게 하는 수능제도와 함께 지방교육자치제의 성과와 방향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도교육감은 수능시험에만 매몰되어 있는 학교교육을 지역의 특색을 살려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학교를 주민에게 개방해 학생과 주민이 세대를 뛰어 넘어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을교육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교사만으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으므로 주민자치위원회와 평생교육협의회 등 주민자치단체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대학입학시험 한번으로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현재의 교육정책을 바로 세우고 지역별 특색있는 교육으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이 다시 살아 숨쉬기를 기대한다.

김현수 순천향대 평생교육학부 교수 hskim5724@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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