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가 또 한 번 날아올랐다. 탑재 위성이 실제 임무를 가지는 첫 번째 시도이자 세계 열 번째 성공이라는 점에서 작년과 다른 감동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제작과 조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2027년까지 3차례 추가 발사를 이어간다는 소식도 남은 성과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관련 업계 부흥과 국력 신장은 당연히 뒤따르는 소득일 것이다.
최근 ‘챗GPT’, ‘바드’와 같은 챗봇이 유행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궁금한 정보를 즉각 알려주고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처럼 창작 활동까지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엉뚱한 답변을 당당하게 내놓아서 우스울 때도 있지만 AI를 누구나 쉽게 활용하는 세상이 됐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접목할 수 있는 영역도 무궁무진해 그 영향력이 실로 지대하다. 이에 따라 AI 기술적 악용을 제어하는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근래의 정상회담에서도 과학기술적 성과가 눈에 띈다. 한미 양국은 군사 동맹을 넘어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 배터리, 양자 등 기술 개발을 위해 국가안보실(NSC) 간 대화 채널을 신설했고,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이공계 청년 교류 프로그램에 6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과는 디지털 바이오, 미래 소재 등 R&D 협력을 추진하면서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공조해나갈 예정이다.
과학기술이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시대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을 위해 수년째 서로를 공격하고 있고,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각국 기술력을 자국 내로 한정·보호하는 움직임을 가속화 했다. 우리도 IT처럼 1등 역량을 굳건히 지키면서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제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 정책 우선순위를 높이고 보다 치열하게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지난 4월에는 국내 22개 대학 정원 확대 계획이 발표됐다. 12대 국가전략기술에 상응하는 첨단 학과 입학생 수가 총 1829명 늘어난다는 내용으로, 급증하는 신산업 수요와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건 국제 정세를 반영한 조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우수 학생들이 의학 계열로 대거 이탈하는 이른바 ‘이공계 엑소더스’가 국내 사회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에서 1000명이 넘는 학생이 중도 이탈했다. 올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자연 계열 합격자 중 등록 포기자가 737명이나 되고, 서울대 공대 신입생의 7.5%가 반수를 위한 휴학을 선택한 가운데 남은 학생 상당수는 물리·화학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상태다. 영재고와 과학고에서는 의대 진학 제재에 따라 전학이나 자퇴를 한 신입생이 2019~2022년간 192명으로 이전 4년 대비 39.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인구 감소로 학령인구까지 급감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가 걸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심각성을 더이상 방관하면 안 된다. 정부는 고급 두뇌들이 이공계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처우를 파격적으로 개선함과 동시에 과학기술 발전으로 공동체와 개인이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또 기술 창업, 산학 협력 등 혁신 생태계 취약점과 과학기술계 종사자 사기 저하 요인을 면밀하게 분석해 해결해야 한다.
향후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첨단 인력 문제는 평생학습 패러다임으로 타개함이 바람직하다. 대학 신규 배출 인원만으로는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충분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재직자, 경력 단절자, 퇴직자까지를 전부 유입해 연결하는 전 생애 주기 경력개발 시스템으로 수급을 맞춰가야 한다. 특히 고경력 재직자의 전문 지식에 AI, SW 등 융합 소양을 더하는 재교육을 강화해 기술 경쟁력은 물론, 첨단 분야 교수진까지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각자도생 세계 질서 속에서 자원 빈국 대한민국 운명은 결국 첨단 과학기술과 우수 인재 확보에 달려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과학기술인 육성과 지원에 다시금 힘을 모으자. 그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해관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경영전략본부장 hkjeong@kird.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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