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인공지능(AI)이 먼저 예측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포스텍(POSTECH)은 이동화 신소재공학과·첨단재료과학부 교수 연구팀이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공동으로, 전기장이 가해진 환경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AI 시뮬레이션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전기장이 없는 데이터만으로 전기장 속 물성 예측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도체 기술은 더 빠르고, 더 작고,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소재가 '비정질1) 하프늄 산화물'이다. 이 물질은 반도체 소자 내부에서 전류를 제어하는 핵심 절연층으로 강한 전기장이 가해지는 경우 내부 원자와 전하 움직임이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소자의 속도와 수명, 안정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전기장 환경에서 원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차세대 반도체 설계의 출발점인 이유다.
문제는 '예측'이었다. 원자 단위의 거동을 계산하는 기존 '제일원리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 방식은 매우 정확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계산이 빠른 경험적 포텐셜 방법은 정밀도가 떨어진다. 최근 머신러닝 기술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전기장 효과를 반영하려면 실제 전기장을 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별도로 구축해야 했다.
연구팀은 '전하 평형법' '그래프 신경망'을 결합한 새로운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원자 간 상호작용을 학습해 전하와 에너지, 힘을 동시에 예측하며, 이를 기반으로 '머신러닝 포텐셜' 기술을 구현한다. 전기장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의 데이터만 학습했음에도 전기장이 있을 때 나타나는 원자 움직임과 전하의 변화를 정확히 재현했다. 기출문제만 공부했는데 전혀 다른 형태의 심화 문제까지 풀어낸 셈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하프늄 산화물 내부 산소 이온 이동 경향과 반도체 소자의 절연 파괴 전압까지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AI 기반 시뮬레이션이 단순 이론 검증을 넘어 실제 반도체 소자의 성능과 내구성을 평가하는 실질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동화 교수는 “기존에는 전기장 반응을 예측하기 위해 고비용의 추가 데이터를 구축해야 했지만, 이번 기술은 별도의 전기장 데이터 없이도 높은 정확도를 확보했다”라며 “차세대 메모리와 뉴로모픽 반도체 설계를 가속하는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이번 연구는 최근 국제 학술지 'npj Computational Materials'의 머신러닝 포텐셜 분야 특별 컬렉션 논문으로 선정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