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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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훈 농촌진흥청 디지털농업추진단장

공상과학 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창시한 마크 와이저 박사는 “뛰어난 기술은 일상생활 속으로 녹아 들어가 식별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올초 미국에서 열렸던 CES에 존 디어 회사의 자율주행 트랙터가 등장했다. 자율주행 트랙터는 카메라로 잡초를 찾아내 정확하게 잡초가 있는 곳에만 농약을 뿌리는 ‘씨앤스프레이(See&Spray)’라는 기술을 탑재했다.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정확하게 식물 옆에 비료를 주는 ‘이그잭트샷(Exact Shot)’ 이라는 기술도 장착해 로봇공학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아마 100년 전 이런 기술이 나왔다면, 도깨비가 한 짓(?)이라거나, 마법을 부린다고 단정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기술은 오히려 익숙할 정도다.

요즘 들판에 나가보면 이앙기가 돌아다니며 모내기에 열심이다. 모를 심는 기계인 이앙기에는 보통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한 사람은 운전을, 또 다른 한 사람은 모판이 끊이지 않게 넣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사람 대신 기계가 모 심는 광경을 처음 봤을 때는 마치 마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광경이라 누구도 신기해하지 않는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력이 부족한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앙기 한 대에 두 명이 타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다. 이런 시대 변화를 정확히 진단하고 개발된 또 하나의 마법 같은 농기계가 있다. 바로 자율주행 이앙기다. 이앙기가 스스로 주행하면서 모를 심는 덕분에 한 사람만 이앙기에 타고 모판을 끊이지 않게 넣어주면 된다. 굳이 두 명이 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사실, 자율주행 이앙기 비슷한 기계는 몇 년 전에도 세상에 나왔다. 회전 구간을 뺀 직진 구간에서 기계 스스로 삐뚤어지지 않고 곧게 나아가면서 모를 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앙기가 스스로 움직일 때 어느 정도의 정밀도를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움직이면서 모를 심을 때 얼마나 정확하게 심어야 하는지 등의 기준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정부 차원의 공식 검정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최근 농촌진흥청 유일의 산하기관인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국가가 정한 기준에 적합한 제1호 자율주행 이앙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기계가 갖춰야 할 성능과 농작업 안전에 관한 기준을 만들었고, 그 기준을 통과함으로써 국가 인증 제1호 자율주행 이앙기가 됐다. 국내 농기계업체는 위성항법장치(GPS)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이앙기를 만들었다. 기계가 스스로 이동하며 모를 심고, 논 끝에 도착하면 스스로 회전할 수 있어 한 사람만 타고 모판을 넣어주면 된다. 자율주행 이앙기를 사용하면 노동력이 절반으로 줄고 모내기하는 시간도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혁신 기술이 일상생활 속에 녹아들어 인류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마법 같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첨단기술이 농업 분야와 속속 결합해 마치 마법을 부리는 듯한 기술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업도 농산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거듭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 차원의 새로운 농업기술 표준화와 기준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실제 사용자인 농업인이 첨단기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체계적 교육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기술 도입 비용과 운영비용 등 경제성도 꼼꼼히 분석하고 검토해야 한다.

아서 클라크의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를 조금 비틀어 보면 “마법과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덜 발달됐다”라고도 읽힌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농업기술이 마법, 그 이상의 파급력을 갖고 우리 농업농촌의 발전을 견인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디지털농업추진단장 jhsung@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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