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를 꼽으라 하면 그것은 단연코 ‘사랑’일 거예요. 문학에는 유독 아름답거나 가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많아요. 정말 좋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하죠. “도대체 이 문인들은 어떤 사랑을 했기에 이런 문장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걸까?”하고 말이죠.

경험과 좋은 작품의 탄생이 완전히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문학계 최수종들을 재조명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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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 박인환

우리에게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이라는 시로 이름을 알렸고, 해방전후 격동기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동하였던 박인환에게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박인환은 31세라는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하였는데, 시인 이상의 20주기를 기념한다면서 4일 동안 무리하게 술을 마신 것을 사망 원인으로 보고 있어요.

그가 마지막으로 지은 시는 ‘세월이 가면’이에요. 명동의 한 술집에서 대표작이 탄생했죠. 박인환 평전에 따르면 이 시가 탄생하기 전날 박인환은 십 년 만에 첫사랑이자 애인이었던 여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고. 예측하지 못했던 죽음이기는 하지만, 그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무언가가 그를 첫사랑에게로 향하게 한 모양이에요.

돈이 없어 소주와 막걸리만 먹었다는 박인환. 쓸쓸한 초봄의 어느 날, 단골 술집에서 술기운을 빌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만든 것인지,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첫사랑을 기리기 위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죽고 동료 문인들이 미망인에게 양해를 얻어 박인환을 옛 연인의 묘 옆에 나란히 묻었다는 것을 보면 후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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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읽으면 “결혼했는데 첫사랑의 옆에 묻었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허나 기혼이었을 적 박인환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박인환 선시집>에 아내 이정숙에게 헌사(獻辭)를 인쇄했을 정도로 부부는 금실이 좋았다고 해요. 1955년에는 배를 타고 미국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아내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하니 부부 사이의 관계가 원만했음을 유추할 수 있죠.

사이가 좋았기에 아내 또한 남편을 첫사랑 옆에 묻는 걸 이해해 준 게 아닐까요? 누구나 가슴 속에 묻어두는 존재가 한 명 쯤은 있을 터인데 박인환 시인은 그게 첫사랑이었던 모양이에요.

2.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는 한평생 한 여인을 사랑하며 살았어요.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루 살로메가 그 주인공. 1897년 22세였던 릴케는 14세 연상이었던 러시아 출신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나자 걷잡을 수 없이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요. 릴케의 대부분의 사랑 시는 루 살로메를 뮤즈로 삼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녀에게 따로 시집까지 헌정할 정도. 원래 릴케의 이름은 르네 마리아 릴케였는데 루 살로메가 프랑스식인 ‘르네’를 독일식인 ‘라이너’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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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루 살로메는 릴케뿐만 아니라 많은 문인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어요. 본인은 누구에게도 속하려 하지 않고 자주적인 삶을 살고자 하였으나 니체, 릴케, 프로이트, 융, 등등의 유명인들이 마음에 품었다고. 릴케 또한 이런 그녀에게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루는 엄청난 지성을 겸비한 여인이었거든요.

여담으로 니체는 루에게 청혼을 거절당하고 나서 “조그맣고 나약하고 더럽고 교활한 여자, 가짜 가슴이나 달고 다니는 구역질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고 ”여자에게 갈 때는 채찍 갖고 가는 것을 잊지 말라“ 는 문장을 적기도 해요. 이런 니케에 비하면 릴케는 비교적 신사처럼 보일 지경.



릴케와 연인 사이를 지속할 때 사실 루에게는 남편이 있었어요. 하지만 “관계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건 일종의 정신적 계약결혼에 불과했죠. 이런 모든 사실을 알고도 릴케는 루를 사랑했으며 심지어 흘려 쓰는 편에 가까웠던 본인의 필체까지 루를 위해 우아한 정자체로 바꾸기까지 해요. 둘이 주고받은 편지만 해도 책으로 내면 400페이지가 넘죠. “저는 기도하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무릎 꿇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열망했습니다.”라고 절절한 마음을 고백하기도 해요.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결국 끝은 있는 법. 먼저 헤어짐을 고한 사람은 루였어요. 이 시기의 릴케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거든요. 릴케는 후에 한 여인과 결혼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불행한 생활을 이루었다고 해요. 릴케 또한 마음 한편에 루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박인환과 릴케, 둘 다 영원한 사랑은 얻지 못했지만, 덕분에 세상에 길이길이 회자될 명작을 만들어 냈네요.


룩말 에디터 lookma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