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 들어 요건을 갖춰 연임 시험대에 오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기관장들이 연이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출연연 내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재차 시험대에 오를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연임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현재 기관평가에서 ‘우수’ 등급 이상을 받은 기관장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출연연법)과 시행령에 따라 연임의 길이 열려있다. 당초 ‘매우 우수’ 등급만 가능했던 기준이 시행령 개정으로 2021년부터 완화됐다.
이는 기관장 개인에도 좋은 일이지만, 기관 운영상 연속성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전부터 출연연 기관장 임기가 짧아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개발(R&D) 수행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제기돼 왔는데, 이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다.
그러나 제도 개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부 들어 연임 사례가 뚝 끊겼다. 기준 완화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8월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번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7월 김명준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박원석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연임이 부결됐다.
최근인 지난달 말에는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도 연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모두 기관평가 우수 등급을 받아 연임 요건을 갖춘 상태였다.
물론 우수 등급 기관장이라고 모두 연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회 재선임(연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번 정부 들어 선임된 출연연 기관장들이 역량에 문제를 보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권 교체 후 기관장 연임이 예외 없이 부결 일변도를 걸으면서, 출연연 내에서는 현 상황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국가 R&D 핵심인 출연연 기관장 인사가 기존 제도 취지, 기관장 성과보다는 전 정권을 지우는 식으로 이뤄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연임 심사 자체가 요식행위가 된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다.
한 출연연 내부 인사는 “이번 표준연의 경우 재선임 부결 결과가 나온지 일주일만에 신임 원장 초빙 공고가 나왔는데,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간극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며 “애초에 연임은 고려하지 않고, 이후 절차를 준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매 정권 초 정무적 판단으로 출연연 기관장 인사가 이뤄지는 일이 적지 않았는데, 과학기술계만큼은 이 같은 관행이 타파되길 바라던 이들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연연 내부 시선은 이후 연임 가능성이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쏠린다. 윤석진 KIST 원장은 이미 NST 기관평가에서 매우 우수 등급을 받은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상위평가가 남아있지만, 통상 기존 결과가 유지돼 연임 심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출연연 내에서는 윤 원장마저 연임에 실패한다면, 출연연 내 불만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더욱이 윤 원장은 이전 원장들보다 높은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다.
또 다른 출연연 인사는 “심사하는 족족 연임이 안 되고 있는데다, 가장 높은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는데도 연임에 실패한다면 결국 ‘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이라 안 됐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정권교체기와 임기 말 시기가 겹치는 기관장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신호를 주는 꼴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