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퍼주기식의 지방 살리기 정책, 실효성 없다”
기업·대학이 지방 갈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절실
지방 이전 기업에 한시적 상속세·증여세 면제 제안
“인구감소 지역에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는 이른바 ‘돈 뿌리기’식 정책은 지방소멸 위기 극복에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국가 개입은 최소화하고, 기업과 대학이 지방을 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장기철 대한민국시도민회연합회(이하 대도연) 수석부회장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전국 8개 시도민회의로 구성된 대도연에서 ‘지방소멸대응 특별법 제정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는 그는 더 이상 예산 퍼주기식의 지방 살리기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진단했다.
장 수석부회장은 “지난 30년 넘게 정부가 지방을 살리기 위해 쓴 예산이 1000조원이 넘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며 “발상의 전환을 통한 파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령 실질적인 영향력과 파급력이 있는 ‘재벌기업’을 인정하고, 이들을 활용해 지역균형 발전 정책 변화의 지렛대로 삼자는 주장이다. 이들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한시적으로 상속세와 증여세를 면제해 주자는 의견이다. 또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게 ‘기업도시 입안권’을 주는 등 파격적인 시도도 제안했다.
그는 현 정부가 국정과제에 ‘지방시대’를 포함하며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에는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첨단산업 진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등 균형발전과 배치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시름이 깊어졌다.
장 수석부회장은 ‘인구절벽’ 쓰나미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 2022년 0.78명으로 떨어졌다. OECD 국가 중 꼴찌다.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해 100만명이 출생했으나 지금은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난제 중의 난제다.
장 수석부회장은 “지역별로는 서울이 0.57명으로 꼴찌고, 부산, 인천, 대구 순으로 낮다. 출산율이 가장 높은 것은 세종이고 이어 전남 등 지방이 0.97명으로 서울에 비해 2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며 “이는 지방회생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산율과 엮여있는 지방회생의 핵심으로 ‘대학 이전’을 꼽았다. 미국의 하버드, 영국의 옥스퍼드,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대학 등은 모두 수도가 아닌 지방에 위치해 있다. 일본도 도쿄대와 교토대, 오사카 대학으로 상위권 대학이 나눠져 있다. 그는 “우리처럼 ‘인서울’에 대학 10위권이 몰려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도연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을 내놓았다. 전 정부에서 여야 의원 200여명이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공감대가 높았다. 하지만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핵심 내용들이 모두 빠졌고, 결국 행정안전부는 1년에 1조원씩 10년간 지방소멸대응 기금을 조성해 지방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장 수석부회장은 “예산퍼주기식의 지원은 이미 수십년간 실패했는데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지난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도연을 결성하게 된 배경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2019년 5월 발족해서 4년간 활동했다. 초기엔 전북, 대구·경북, 광주·전남 3곳이 중심이 되어서 설립됐고 지금은 경기도를 제외한 전국 8개 시도민회의로 구성됐다. 연합회 이사장은 안동병원 설립자인 강보영 회장님이 맡고 있다. 집행부가 30여명에 이르며, 회원인 임원들은 1000여명 정도이다. 이익단체가 아닌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결성된 비영리단체(NGO)이다. ‘지방을 살리자’는 한뜻으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회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섰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막을 근본대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0년 49.3%였던 수도권 인구는 2020년에는 50.2%로 절반을 넘어섰고, 전체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된 뒤에도 2021년 50.4%, 2022년 50.5%로 계속 증가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현 정부가 첨단산업을 진흥한다는 명목으로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이나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 등을 발표하면서 수도권에 사업 대상지를 몰아넣었다. 이는 결국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방의 양극화를 더 심화되게 할 뿐이다. 제대로 된 수도권 과밀 억제 정책이 절실하다.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산업단지에 대해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아닌 다른 불이익을 줘야 마땅하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보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눈앞에 있는 것만 봐서는 안된다.
-정부가 기존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해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을 준비 중이다.
▲사실상 이름만 바뀔 뿐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하더라도 크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본다. 대도연에서 지난 4년동안 정부를 비롯해 여야 심지어 정의당, 시민단체, 사회단체 등과 120회 이상의 크고 작은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도 적극 소통해 왔는데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인식은 공유하고 있지만 기존 실패한 정책의 틀 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지방소멸대응 특별법 제정 TF’를 이끌고 있다. 주요 대책과 향후 로드맵은 무엇인가.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은 수많은 공청회와 세미나를 통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고, 다소 혁명적인 발상이 담겼다. 대학과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시키자는 내용이 골자인데,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이전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인센티브를 줘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지방대학은 벚꽃피는 순서로 망하고 있다. 이미 학령 인구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많은 실정이다. 입학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출구’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 설립 초기 들어간 자본을 재단이 회수할 수 있는 퇴출로를 만들어주면 대학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고, 정부의 천문학적인 예산도 더 이상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수도권 명문 대학을 지방으로 적극 이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 수도권에는 명문 대학이 거의 없다.
우리가 연구한 모델은 연세대 신촌캠퍼스다. 신촌캠퍼스 부지가 약 20만평인데 연세대의 상징적 역사를 보존할 5만평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 15만평은 용도를 변경해 상업·주거지역으로 개발하도록 한다. 시세를 따져 평당 1억원으로 생각하면 15조원이라는 개발이익이 생긴다. 그 돈을 학교와 재단에 주고, 든든한 재단을 만들게 하면 된다. 재단은 아이비리그 대학처럼 전 세계 우수한 학생들을 장학금 줘서 데려오고 석학 교수를 모실 수 있다. 15조원 가운데 3조원만 투자해도 지역에서 아이비리그 수준에 필적하는 대학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대한민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만들 수 있다.
국립대인 서울대의 경우 지방거점대학에 단과대학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농업 관련 연구기관이 집중되어 있는 전북에는 농·생명대학을, 경북에는 의과대학 등을 보내 지방에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 역시도 대학과 맞물려서 가야 한다. 그래야지 대한민국이 지속발전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된다.
-그간 지방회생을 위한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었나.
▲기득권이다. 정부든, 여야든 기득권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결론을 낸 것은 정부 예산 중심의 지원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로 30년 가까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해왔으나 갈수록 강이 벌어지듯 벌어지고 있고, 결국 실패했다. 돈으로 구멍을 메우는 식의 지역 살리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지방에 법·제도 개선해서 제대로 된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지방에 새로운 산업단지를 만들고 기업을 유치하려는 활동은 죄다 실패했다. 이유는 지자체나 정부 주도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지방을 오히려 부패시킬 뿐이다. 기업이 스스로 이전할 수 있도록 법률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 재벌 대기업을 인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들 기업들이 결국엔 패를 쥐고 있다. 별수를 다 써도 이 패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으니 실질적인 혜택을 통해 재대로된 기업들이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독일처럼 가업 승계 기업에게 10년정도 한시적으로 상속세·증여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지방으로 기업이 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 게 핵심이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게 기업도시 입안권을 주는 파격적인 시도도 해봐야 한다. 대신 지자체의 권한은 없애야 한다. 오히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전하는 기업을 괴롭히고 방해한다. 군수나 시장이 엉뚱한 짓을 할 수 없도록 기업 주도로 도시 계획을 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인구감소 지역에 지방소멸대응 기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금이 지난해 도입됐다. 1년에 1조원씩 향후 10년간 편성하도록 했다. 올해는 1조7500억원으로 더 늘었다. 인구저점을 기록한 시·군·구 118곳이 차등적으로 나눠먹었다. 기금이 지방의 인구소멸을 막는 역할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이 돈은 내년 선거를 앞둔 지역 정치인들에게 선거에 활용하도록 ‘쌈짓돈’을 준 셈이다. 매년 발생하는 거액의 기금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기 바쁠 것이다.
-지방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광역단위로 도지사들에게 중앙정부 권한을 이양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정읍의 경우 농사철이 시작되면 외국인 농사꾼 1만명이 일을 한다. 하지만 이 들 중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자들이다. 호남 지역은 농토가 넓은데다 기계화·자동화가 어려운 밭농사를 하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도지사에게 이민법을 개정해서 근로자들을 자기 지역에 맡게 할당을 할 수 있도록 비자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농사철에만 기간을 정해서 한시적으로 할 수도 있다.
-제주도와 강원도에 이어 전북이 내년에 특별자치도가 된다.
▲특별자치도의 원조격인 제주도의 경우, 지역의 특수성을 살린 자치권의 대폭 확대로 궤도에 올랐지만 지역이 광활하고 시군이 많은 강원도와 전북의 경우는 이제 시작이다. 특히 지방소멸 위기가 가장 심각한 전북도민들의 이에 대한 기대치는 아주 높다. 산업 기반이 약한 전북은 국세 납부 비중이 전국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지역 경제가 말이 아니다. 빈 집 비율을 보더라도 정읍시와 김제시가 1, 2등이고 임실군이 4등, 고창군이 7등, 남원시가 10등으로 지역의 공동화는 가속도가 붙은 실정이다. 이런 낙후지역의 염원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완화하고 산업단지 입안권을 특별자치도로 이양하는 등 자치권을 큰 폭으로 보장해줘야 하는데, 중앙정부 각 부처가 과연 권한을 내놓을 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제 개혁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우리의 살길이다. 소선거구제는 여야가 적대적 공생 관계로 출발한 제도다. 기본적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정책 비전을 가지고 있는 전국적인 큰 인물이 당선될 수 있다. 국회 수준을 높일 수 있다. 21대 국회가 최악이라고 한다. 지금의 의원들은 지역의 권리 당원을 관리하기 위해 매주 지방을 향하고 있다. 명망 높고 실력있는 인사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골목대장을 뽑는 구조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경제인, 학계, 명망있는 인사나 시민·사회단체와 접점을 찾아서 소통하려 하기 보다 지역 동창회, 향우회만 쫒아다닌다.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중대선거구제가 맞다고 본다.
◇장기철 대한민국시도민회연합회 수석부회장은
1959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30년 가까이 KBS 기자로 활동했다. 법조팀장, 디지털 전환사업 국장 등을 지내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텃밭인 전북 정읍에 출마한 바 있다. 이후 전 민주당 정읍 지역위원장, 아츠앤컬쳐 공동대표, 정읍 수제천보존회 이사장, 재경전라북도민회 상임부회장 등을 거쳤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