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디지털 기술로 대전환 시대를 맞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보건 분야에서도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과거 '경험중심' 의학은 현재 '근거중심' 의학으로 변화했고, 앞으로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데이터중심' 의학이 도래할 것이다.
정보의 주체가 의료인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치료중심에서 예방과 질병관리 중심으로, 시설중심에서 지역중심으로, 사후치료에서 질병 예측과 맞춤의학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료서비스 변화의 중심에 지금 제도화 논의가 한창인 비대면 진료가 있다.
30여년 동안 시범사업과 법안 폐기만 반복하던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 10개월 동안 코로나19 재택치료 대상자를 포함한 환자 1379만명이 3661만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평균 2.7회 비대면진료를 받은 셈이다. 코로나19 재택치료 대상자를 제외한 일반 환자는 329만명이 736만건의 비대면진료를 받았다.
이제는 비대면 진료 법제화가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가 논쟁의 지점이 아니다. 비대면 진료는 벌써 우리 삶에 들어와 있다. 그럼 다음 논의 지점은 어디인가. 바로 '어떤 비대면 진료가 되도록 할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다. 국민 건강권을 위하는 바람직한 비대면 진료를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말하고 싶다.
첫째 비대면 진료는 보안이 검증된 환경에서 육성해야 한다. 이미 비대면 진료를 본업으로 하는 다수의 민간 플랫폼 업체가 존재하며, 그 수는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그들 모두가 환자의 민감한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이나 개인정보및정보보호관리체계(ISMS-P) 인증을 받았는가 묻고 싶다. 만약 그러지 못하다면 적법한 정보보호 인증 체계를 구축한 업체만이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 환자의 민감한 의료 정보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이를 외부 환경의 위협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보다 앞서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의료인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의료인의 목소리란 바로 공공 의료와 필수 의료를 보전하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 방문을 꺼리는 사람에게도 의료 이용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소아과 진료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 지난해 0∼14세 영유아·어린이가 무려 195만6000여건의 비대면 진료를 이용했다는 것을 주목하자. 제도 시행 첫해인 2020년 5만7000여건과 비교해 2년 사이 약 34배 증가한 수치다. 비대면 진료가 의료 수요를 이끌어 필수 의료 보전에 기여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반면에 비대면 진료가 특정 질환과 맞물려서 수익화 수단이 되는 것에는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에 더욱 장려하고, 재난의료 대응체계를 구축하거나 만성 고령 등 돌봄 환자를 위한 방향성을 의료진이 함께 제시해야 한다.
셋째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이 필요하다. 비대면진료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비단 한국인뿐만 아니라 해외의 그 누구라도 비대면 진료로 한국 의료진을 만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비대면 진료를 운영하는 민간 플랫폼의 수익성 문제도 해결해 줄 것이다. 더 나아가 자랑스러운 한국 의료 수출에 이바지할 것이다.
비대면진료는 대면진료의 보완제이자 촉진제이다. 해외 비대면진료는 국가적인 차원으로 장려한다면 외국인 환자 유치업과 같은 관광 사업의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 소득 증가 등으로 건강에 관심이 확대되는 추세다. 의료서비스 현장의 정보통신기술(ICT) 수용도가 향상되고 있고, 디지털헬스가 가져올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기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 의료체계는 건강 패러다임 변화에 맞게 질병이 아닌 사람,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으로 가야 한다. 이를 실현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디지털헬스를 활용해 병원과 지역, 더 나아가 세계를 연결하는 관점에서 비대면 진료를 논의해야 한다. 의료소비자의 현명한 선택과 의료인의 전문성을 믿고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디지털헬스 전환의 마중물로 삼을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권순용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 sykwon@catholic.ac.kr
-
송혜영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