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영화 테트리스와 게임 IP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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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가천대 교수

영화 '테트리스'는 1980년대 후반 배경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일본에서 게임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던 주인공 헹크 로저스는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테트리스를 처음 보고 성공을 직감했다. 그는 원저작자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를 만나기 위해 소련으로 건너가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냉전시절 소련 정부의 대외무역 기관으로부터 PC·아케이드·휴대용 게임의 저작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영국·미국·일본의 여러 회사와 경쟁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스토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실제로 2000년대 초 우리나라 한게임, 넷마블, 컴투스 또한 테트리스 저작권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했다.

최근 들어 국내 게임업계에서도 저작권 침해 소송이 이어지고, 지식재산(IP) 관련 다툼이 커지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 할 베리안은 정보상품의 IP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 2차 저작물 등 전체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권고한다. 디즈니, MS 등도 사용자 기반을 확대할 때에는 저작권을 느슨하게 하고 이용자들이 충분히 락인(Lock-in) 되면 저작권 보호를 강화한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기존 인기 IP로 신작 게임을 개발하면 라이선스 비용이 발생하지만 개발비가 절감되고 기존 마니아 팬들에게 '입소문 마케팅'을 해서 홍보비도 줄일 수 있다. 이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게임업계가 '팬덤 마케팅'을 통해 마니아층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 홍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게임회사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인터넷 광고 외에도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 TV나 대형 옥외광고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정도로 홍보비 규모가 커졌다. 신작을 개발하는 비용도 증가했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게임을 개발하려면 보통 10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1000억 원에 달하는 개발비가 들어간 대작 게임도 있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 특성상 게임 흥행이 실패할 경우 투입된 개발비를 회수하기는 매우 어렵다.

경기 둔화와 함께 레트로(복고문화)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1990년대 문화 코드이던 '슬램덩크'가 영화로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고 있고, 클래식 콘솔 게임 판매도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1980~1990년대 게임을 즐기던 세대가 과거를 기억하거나 자녀 세대와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레트로 게임 구매를 늘리고 있다. 이른바 '뉴트로' 현상으로 이어져서 젊은 세대도 과거 게임의 독특한 감성을 느끼기 위해 동참 대열에 나섰다.

영화 '테트리스'에서 보여 준 것처럼 해외에서 기존 IP를 활용한 역사는 길다. IP 게임의 효시는 1979년에 출시된 아타리 사의 '슈퍼맨' 게임이다.

이후 마블 코믹스 만화책이나 영화 IP에 출현하는 수많은 영웅과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게임이 제작됐다. 기존 마블 팬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증강현실(AR) 대표 게임이라 할 만한 '포켓몬 고'도 일본 닌텐도가 만든 포켓몬스터 게임 IP를 활용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유명 만화나 연예인 IP를 이용한 2차원(2D) 게임이 출시됐다. 최초의 상업용 머드게임인 '쥬라기 공원'은 쥬라기 공원 게임북, '바람의 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는 동명의 만화를 각각 모티브로 해서 개발됐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 인기 PC 버전 게임을 모바일화하는 경우가 많다. '리니지' '검은사막' 등이 대표적이다. 원작의 재미는 살리면서 모바일만의 장점을 더했다. 그러나 일부 모바일 IP 게임은 다른 게임과 유사하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핵심인 전투 요소가 적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기존 IP에 대한 이용자 기대수준을 맞추기 어려운 점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원작을 모르면 플레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IP게임의 특징적인 부분으로는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갓 오브 하이스쿨'은 2011년부터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웹툰 캐릭터를 활용해 개발됐다. 웹툰 인기에 힘입어 한동안 많은 팬이 게임에 참여했으나, 잦은 서버 오류와 게임 이용자 소통 부족으로 인기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웹툰 오리지널 IP가 드라마, 영화 외에도 이용자와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게임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기존 IP 활용은 게임산업 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존 IP로 팬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지만 세계관과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 의견을 반영해 게임을 운영하다 보면 원작과 멀어지게 되고, 마니아들은 중간에 이탈하게 된다. 실제로 게임 IP에서 원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드물고, 조용히 잊히는 경우도 많다.

올해 초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됐다. P2E 등 신규 사업모델 도입에 대한 규제 이슈도 불거지고 있다. 게임산업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어려우니 기존 인기 IP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진 것이다. 결국 게임 전반에 걸쳐 다양성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게임회사는 기존 IP를 활용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재미를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이용자와 끊임없이 소통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게임을 통해 많은 국민이 위로받고 국민적 사랑을 받는 게임이 많아진다면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사라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서울대 AI연구원 객원연구원 smjeon@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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