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칼럼]게임을 계속하려면 베팅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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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회사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은 최근 자신이 투자를 주도하고 이사회 멤버로도 활약한 범죄 추적 플랫폼 기업 '시티즌'(Citizen)의 이사직을 사임했다. 새로운 투자 라운드에 기존 투자자가 참여하지 않으면 현재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10분의 1로 절하시킨다는 이른바 '페이투플레이'(pay-to-play) 조항이 적용됨에 따라 신규 투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세쿼이아의 지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VC 시장은 주주 간 계약이 철저히 합리주의와 힘의 논리로 이뤄진다. 대표적 조항이 페이투플레이다. 포커게임에서는 최종 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플레이어들이 카드를 추가로 받을 때마다 반드시 베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전에 아무리 많을 돈을 넣었더라도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패를 접는 순간 자기 몫은 없어진다. 페이투플레이의 기본 철학은 포커게임과 유사하다. 회사가 어려운 때일수록 외면하지 말고 계속 지원해서 투자하는 주주에게는 혜택을 주고, 투자를 멈추면 패널티를 주자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회사 운영에 필요한 돈을 한꺼번에 조달하지 않고 보통 1년이나 1년 반에 한 번 투자를 받아 회사를 운영한다. 투자는 시드(Seed),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로 이어진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으로 엑시트할 때까지 투자 라운드는 시리즈D·E·F로 계속된다. 투자는 대부분 투자자를 보호하는 여러 조건이 붙은 우선주로 진행된다.

성장하는 회사는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기업가치가 계속 상승하지만 스타트업 특성상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투자 라운드는 후속 투자의 기업가치가 직전보다 높은 '업라운드', 동일한 밸류에이션인 '플랫라운드', 오히려 가치가 떨어진 '다운라운드'로 구분된다. 업라운드라면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고, 플랫라운드는 투자를 받은 후 실질 성장이 없었다는 뜻이므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다운라운드는 투자 유치 이후 회사 가치가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회사가 망할 공산이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운라운드 투자를 '매몰 비용의 오류'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에 다운라운드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죽어 가는 기업을 살리는 것인 만큼 앞으로 회사가 문을 닫거나 매각하거나 IPO를 할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며, 기존 투자자에게는 페이투플레이 조건을 달게 된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의 다운라운드 투자가 진행되면 기존 투자자가 500억원을 투자한다는 조건으로 신규 투자자가 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조건을 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기존 주주에게 할당된 500억원을 지분율만큼 투자하지 않는 투자자에 대해서는 기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고, 10대 1로 감자하는 것이다. 결국 참여하지 않는 기존 투자자는 보유 주식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최근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스타트업의 다운라운드 상황은 일부 특정 기업의 내부 사정이 아닌 거시적 변수인 글로벌 긴축경제, 고금리, 은행 파산 등으로 촉발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유니콘기업인 컬리를 비롯해 많은 테크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다운라운드라도 투자를 받기 위한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상장기업 주가를 통해 오랫동안 학습됐다. 주가는 산업 및 경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등락을 반복하는데 일정 수준으로의 주가 하락은 투자자들에게 매우 좋은 매수 기회로 여겨진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미래 가치가 높은 기업을 아주 낮은 가격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스타트업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 플레이어는 베팅해야만 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