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모빌리티 전동화 격변…위기는 곧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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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지난날의 전성기를 그리워할 때 쓰는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리즈(Leeds)'는 영국 웨스트요크셔주 중부 도시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즈 유나이티드' 클럽 연고지다. '리즈 시절'의 유래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팀 동료였던 앨런 스미스를 지칭하며 나온 말이다. 뛰어난 기량의 앨런 스미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 후 옛 리즈유나이티드 때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았고, 이에 아쉬움을 가진 팬들이 그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며 '리즈 시절'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모빌리티 산업이 전동화 파고 속에서 대전환 격변기에 들어서고 있다. 전동화 흐름에 합류하지 못한 기계 부품 위주 자동차 부품기업은 리즈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지 모른다.

기업역량에 맞는 전동화 모델 개발로 지난 황금기를 되살려 줄 리즈 시절의 갱신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대응 및 규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 요구 등 글로벌 산업환경은 분야별 생태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영향은 온실가스 배출이 높은 내연기관 중심 자동차 산업에 세찬 전동화 파고를 몰고 왔다. 지금까지는 버틸 수준이라 해도 내연기관(엔진)차 생산 및 판매 중단 시점인 2030년 전후가 되면 파고는 쓰나미가 된다.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파고로 기계 중심 자동차 부품산업, 특히 중소 지역부품산업(기업)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자동차 산업 전동화에 따라 기존 3만여개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수는 2만개 이하로 무려 37%나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지만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 요소를 함께 가져오기 마련이다. 기회는 급변하는 산업환경을 보다 큰 틀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새 시각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잡을 수 있다.

자동차를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시기다. 자동차를 기계로, 관련 부품을 기계 부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다가온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는 기계 중심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과거 엔진 자동차에서 전기·전자 부품 비율은 높아야 10~20%였고, 그것도 차량 보조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으로 여겨졌다. 현재 전동화 기반 전기차, 수소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면서 전기·전자 부품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향후 60~7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계 부품 위상도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이미 자동차 산업을 전기·전자 기반 기계 융합산업 또는 전기·전자산업으로 인식하는 추세다.

일례로 전기차 동력원(배터리·수소연료전지)뿐만 아니라 구동·제어·센싱 등에도 전기·전자 기반 부품군(e-Axle·e-Corner·e-Actuator·ADAS 등)이 확대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기업 인력구조도 기계 중심에서 전기·전자 분야로 재편되고 있다. 차별화한 전동화 부품을 개발하려면 전기·전자제어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전기·전자용 소재산업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동력원인 배터리, 수소연료전지 외에도 구동모터, 전력변환시스템(인버터·컨버터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각종 센서와 열관리, 전자기파 차폐 등에서 다양한 고효율 기능성 소재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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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에 관한 기존 관점과 새로운 관점.

미래 모빌리티 주류가 배터리 기반 전기차가 될지 수소연료전지 기반 수소전기차가 될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내연기관 중단 시기를 놓고도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미래 모빌리티는 내연기관이 아닌 전동화라는 방향은 분명하다. 공통 핵심 부품군에 주력하면 잠재적 비즈니스 리스크는 어느 정도 줄어든다. 글로벌 대형 자동차 부품사는 전동화를 넘어 자율주행까지 내다보고 전기·전자,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다양한 전문인력을 보강하고 있다. 협력사 설립이나 인수합병을 추진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런 전동화 대응 이면에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부품 수는 줄고 전기·전자 기반 통합제어 등 전동화 부품 기능이 더욱 복잡해지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 특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산업에 배터리 제조사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아마존, LG전자 같은 글로벌 SW, 전기·전자 기업까지 합류해 치열하게 협력 또는 경쟁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산업, 특히 역량이 부족한 지역 중소 부품업계는 어떻게 전동화 파고를 넘고 새로운 기회요소를 찾을 수 있을까. 먼저 기업 역량에 맞는 유망 전동부품을 선정하고, 롤모델로 삼을 글로벌 부품기업의 전동화 대응 기술 동향을 철저하게 파악해 이를 배워야 한다. 역량이 부족한 기업은 다른 기업 및 연구기관과 협력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 '모빌리티 부품소재 개발 전략(모부병법)'을 제안한다.

'모부병법'은 모방을 통해 배우고 이를 창의적으로 역설계해 새로운 부품소재를 개발하는 방안이다. 롤모델로 삼은 글로벌 기업의 전동화 부품을 모방하고 이를 비교 평가해 배운다(1단계 지피지기), 부족하면 외부 협력으로 배워 역량을 강화한다(2단계 상생협력), 마지막으로 보완 시제품을 새롭게 역설계해 창의적으로 만들어 함께 성장한다(3단계 동반성장)는 3단계 전략이다.

요약하자면 기존 자동차와 부품산업 생태계 붕괴와 전동화 재편 정보와 인식을 공유하고, 미래 e모빌리티 산업에 초점을 맞춰 국내 부품소재 기업과 기관이 함께 발전하는 새로운 기회요소를 찾자는 얘기다.

미래 e모빌리티 산업은 기후변화,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중단, 산업 및 기술영역 파괴, 탈세계화 등 불확실성 확산과 이에 따른 새로운 산업 질서 재편과 연계돼 있다.

결국 자동차와 전기·전자, 통신 등 대규모 산업간 융합이 미래산업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융합 미래산업이 요구하는 부품(개발)은 독자(기업) 조직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투자 비용과 위험성이 너무 크다. 기술, 인력, 생산 규모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많은 기회요소를 찾고 활용할 수 있다. 한국재료연구원도 미래 e모빌리티 산업에서 국내기업이 중심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동참할 것이다. 기회는 항상 위기의 탈을 쓰고 찾아오기에 위기는 곧 기회다. 기회를 붙잡는 능력은 철저한 대응과 준비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ljh1239@kims.re.kr

◇이정환 원장은…

1982년 재료연구소 연구원을 시작으로 융합공정연구부장, 산업기술지원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 부소장, 소장을 지냈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에서 독립한 한국재료연구원으로의 원 승격을 주도했고, 2020년 한국재료연구원 출범과 함께 초대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한국소성가공학회장, 한국엔지니어연합회 창원지역회장, 한국산업기술인회장, 경남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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