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직사각형 안에 하얀색으로 적힌 'supreme'.
패션 브랜드 슈프림의 상표다. 슈프림은 막강한 팬덤으로 유명하다. 신제품 발매 소식이 알려지면 매장 앞엔 며칠 전부터 대기줄이 생긴다. 명품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은 리셀시장에서 출고가보다 수십배 높은 가격에 팔린다.
이런 슈프림이 진출에서 유독 고전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슈프림은 올해 매장을 열고 한국에 공식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상표권을 등록하지 못했다.
슈프림은 지난 2013년 한국 특허청에 상표권 등록을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식별력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게 사유다. 슈프림은 2018년 재도전에 나섰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난해 특허청이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인정하면서 상표권 출원 공고를 받았다.
지난한 노력이 열매를 맺는가 했지만 기쁨도 잠시, 이의신청 4건이 쏟아졌다. 이의신청 사유는 '식별력 부족' '선행 등록 상표와의 유사성' 등이다. 국내에 먼저 등록한 상표와 유사하다는 게 골자다.
이의신청이 접수되면 별도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심사 대기기간은 1년 이상이다.
취재 과정에서 의견을 구한 다수 변리사는 이의신청의 진짜 목적이 상표권 등록 지연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슈프림이 해외에서 먼저 상표권을 등록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상황에서 식별력 부족과 국내 상표와 유사하다는 이의신청 사유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의신청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유사 상표권자다. 오픈마켓에서 슈프림의 고유 상표가 찍힌 휴대폰케이스, 지갑, 가방 등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이들은 “국내 상표권자가 생산한 제품으로, 유명 브랜드와는 무관하다”는 설명과 함께 상표권 등록증도 보여 준다. 이들은 최소 1년은 안전하게 영업할 기회를 보장받았다.
슈프림의 상표권 등록을 둘러싼 난맥상은 우리나라 상표권 보호의 빈틈을 보여 줬다. 특히 이의신청 제도의 개선 필요성은 분명해 보인다.
한 변리사는 “이의신청이 일단 제기되면 1년 이상을 기다려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이의신청 사유와 무관하게 무조건 심사를 기다리는 것은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왜 해외 브랜드의 상표권 등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배경을 우리 상표의 진출이 활발한 중국·동남아시아 국가로 돌려보자. 우리 상표가 이들 국가에서 상표권을 등록할 때 겪는 어려움이 슈프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식재산권을 보호하지 않는 이들 국가의 후진성을 비판했다. 상표권을 보호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격과도 연결된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