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사명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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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안부를 물으며 교환한 명함에서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개명 전 친구의 이름은 순우리말이었는데 바뀐 이름은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흔한 이름이었다. 개명한 사정이 짐작돼 앞길을 응원하며 새로운 이름을 연락처로 저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은 작명소 거리가 생겨날 정도로 의미가 특별하다. 지난해 전국에서 개명한 인구가 11만1619명이나 된다. 나를 타인에게 알리는 첫 번째 표지이기도 하지만 이름이 운명을 바꿔 준다는 믿음도 마음 한 구석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즘 식품업계에서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가 사명 변경이다. 롯데제과, CJ제일제당, 매일유업이 사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회사명은 창업주가 직접 지었지만 특정 사업 부문을 한정하고 있어 현재 사업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시장 매출 비중이 높아지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롯데제과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1967년에 세운, 롯데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지난해 롯데제과는 롯데푸드와 합병한 후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사명 변경을 검토해 왔다. 통합 이후 가정간편식이나 대체단백질 신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사업 영역을 '제과'에 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매일유업과 CJ제일제당도 사명에서 '유업'과 '제당'을 떼어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매일유업은 1969년 창업주 김복용 회장이 한국낙농가공으로 시작, 1980년부터 현재의 사명을 사용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로 설립해 국내 최초의 설탕 제조사라는 정체성을 이어 왔다. CJ제일제당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53년에 설립할 당시 지은 이름이다.

수십년 동안 기업의 뿌리이자 모태로 인식돼 온 만큼 사명 변경 결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식품사들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식품 기업으로 도약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전체 식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해외 비중이 절반에 근접했다. 지난 2018년만 해도 CJ제일제당의 식품 부문 해외 매출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2019년 슈완스 인수 후 비중이 점차 늘어 지난해 역대 최고인 47%까지 올랐다. 롯데제과 역시 해외 부문 매출이 매년 성장세를 보이면서 올해 매출 비중이 20.6%로 확대가 관측된다. 매일유업의 경우 우유 소비가 감소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주력 사업인 우유와 분유 이외 단백질 건강기능식품이나 식물성 대체음료, 외식 등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명 변경은 그동안의 친숙함을 놓칠 공산도 내포한다.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이유다. 다만 이름이 행동 방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사명 변경을 결정했다면 새로운 비전도 충실히 담아야 할 것이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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