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장기적으로 확보한 매출처를 제시하라는 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고한 '글로벌 스타 팹리스30 사업'을 두고 일부 업체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내 팹리스는 물론 스타트업 현실을 간과하고 주요 평가 항목에 매출을 넣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스타 팹리스30 사업은 세계 매출 30위권 내 글로벌 팹리스 3개사 이상을 육성하고, 첨단 기술력을 갖춘 신생 팹리스 5개사 이상을 배출하는 등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됐다.
10여개사의 팹리스를 선정해서 3년 동안 최대 20억원과 한·미 반도체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등 규모가 꽤 큰 사업이다. 심사를 수차례 진행한 가운데 최종 기업 선정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 7년을 기준으로 '글로벌스타'(7년 이상), '라이징 스타'(7년 이하)로 선정 기준을 나눴는데 모두 매출을 주요 평가 항목에 포함시켰다. 글로벌 스타에는 최근 매출액과 3년 동안의 매출 증가율, 라이징 스타에는 매출액을 각각 따진다.
그러다 보니 터치 집적회로(IC), 이미지센서(CIS) 등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매출이 발생하는 상장사 다수만 심사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능성 있는 기업 발굴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실력 있는 스타트업이 없을까. 신경망처리장치(NPU) 기반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유망기술에 집중하는 팹리스가 다수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나 센서 등 틈새 시장에 주력하던 과거보다 NPU, 중앙처리장치(CPU) 등 핵심 반도체에 더 도전하고 있다. 다만 사업 초기이다 보니 실질적 매출과 수익은 아직 없다. 그러면 이들은 낙제점인 것일까. 물론 심사를 통과한 팹리스 기술력이 우수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매출 수천억원대의 기업과 스타트업을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구도는 수긍하기 어렵다.
지난 20일 정부가 발표한 '신성장 4.0' 로드맵에는 국내 AI 팹리스 투자 확대와 다음 달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 전략 등의 내용이 담겼다. 최근 AI 챗봇 '챗GPT'로 AI반도체가 주목받은 것이 배경으로 보인다.
3개월 전에 공고한 글로벌스타팹리스30 사업도 이제 선정 막바지 단계를 밟고 있는데 다음 달 발표할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전략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걱정부터 든다. 물론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객관적인 기준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실력 있는 기업이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미래 사업성과 성장성보다 그동안의 성과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미래 유망기업 발굴이라는 취지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윤섭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