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에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많은 학생이 휴학하고 다시 대입 전형에 도전해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등 이른바 '의치한약수' 진학을 위해 뛰어드는 것이다. 특히 의대로의 집중이 두드러진다. 전통적 인기학과도 이러한 학생 유출 고민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탈 학생이 늘면 정상적 학사 운영이 곤란해지며, 학생 간 유대도 약화하는 등 파생되는 문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등록금 의존 비율이 높은 대부분의 대학에는 재정 문제도 동반된다.
이런 도전자 가운데 20대 중·후반 사회 초년생부터 30·40대 직장인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도 요즘 세태의 하나다.
입시 학원가에 가 보면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학생부터, 대입을 준비하는 중고생과 재수생,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사회에 진출해 오랜 경륜을 가진 의대 지망생까지 뒤섞여 있다.
의약 계통 전공이 제공하는 자격증이 주는 안정성에다 건강만 뒷받침된다면 일흔 넘은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든든함이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많은 이가 도전 또 도전하고 있다. 여기서 안정성은 단순히 공인된 자격을 갖추면서 전문가 집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수많은 자격증이 있는데 의약 계열로 쏠리는 이유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의사를 대체한다 해도 여전히 정신과 상담이나 외과수술, 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성형수술 등에서는 인간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담긴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건강한 노후가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사회 전반적인 보건의료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숨어 있다. 인구는 줄겠지만 장수 추세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는 여전히 밝다고 보는 것이다. 건강만 뒷받침된다면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든든함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니더라도 팔팔한 30·40대에 일을 놓아야 한다는 불안감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후 줄곧 우리 청년의 마음을 옥죄어 왔다. 여기에 '워라밸'(균형감 있는 일과 생활)을 중시하는 흐름에도 자격증이 있는 의료전문직은 정확히 부합한다. 물론 의료 계통 전문직이 되기까지는 10년 가까이 공부해야 하고, 사회로 나가더라도 주말이나 평일 저녁 할 것 없이 뼈빠지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긴 하다. 그래도 직장을 옮기기 쉽고, 근무시간도 조정 가능하며, 출산과 육아 등을 위해 일정 기간 쉴 수도 있다는 장점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미래를 담보할 연금이나 사회보장체계가 미덥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 자력 갱생을 하기에는 여전히 의료 계통 전문직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개인의 적성이다. 세계적인 수학자로 떠오른 허준이 교수가 만약 대학시절 휴학하고 의대를 가기 위해 'n수'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수학 분야의 엄청난 인재를 자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성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많은 학생과 사회경제적 자원이 특정 직군만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다만 이러한 흐름에 숨어 있는 사람의 욕망을 읽고, 그러한 욕망을 위해 사회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다양한 직업을 동시에 갖는 n잡러나 한 가지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인생n모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저렴한 평생교육제도 등도 논의해 볼 수 있겠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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