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정권, 원자력 기관 운영·R&D 큰 틀 흔들어
탈-탈원전 정책으로 반전…연구 활기 기대감↑
SMR '스마트' 加 샌드오일 채굴지역 배치 추진
UAE 300억달러 투자 유치…수출로 국격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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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분야는 지난 정권에서 적지 않은 부침을 겪었다. 오랜 기간 관련 연구개발(R&D) 핵심 역할을 한 한국원자력연구원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탈원전 정책이 기관 운영과 R&D 큰 틀을 흔들었다. 안전, 폐로 연구가 주류가 됐다. 기관이 위축됐고, 본의 아니게 미래에 대비한 선진 원전기술 개발에도 적극 나서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상황이 반전했다. 탈-탈원전 정책 기조가 고개를 들었다. 더욱이 주한규 원장이 기관을 이끌게 되면서 원자력연도 그동안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된다.

주 원장은 원자력 분야에 엄혹하던 지난 정권 시기에도 줄곧 그 원자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다.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그 이전에는 오랜 기간 원자력연에 적을 둬 기관 사정에도 익숙하다.

주 원장은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의지도 충만하다고 했다. 그를 만나 다소 주춤한 원자력 기술을 부흥시킬 기관 운영과 R&D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최정훈 전국총괄국장

-오랜만에 친정 복귀다. 예전과 비교해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가.

▲원자력연에는 2004년까지 재직하다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18년 만에 돌아왔다. 와서 보니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원자력 에너지 활용 부분에만 성과가 있었는데 현재는 방사선이나 양자 빔을 활용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성과를 내고 있다. 기관 성과가 다채로워졌다.

다만 연구원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있었다. 원자력 분야 모두가 겪은 일이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기관 전체 활력이 떨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는 일이 인정 못 받는데 사기가 높을 리가 없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침체 분위기를 느꼈을 것 같다.

▲대학원에서 가르치던 과목이 폐강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래도 원자력 시설 설계 핵심 과목인데 이 정도로 학생이 없나' 싶었다. 서울대도 그랬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부산대도 원자력 분야가 많은 어려움 겪은 것으로 안다. 학생들이 기피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원전 건설이 중단되는 마당에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부족한 상황이지만 학생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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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 정책 변화가 이뤄졌다.

▲원자력 분야는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절대 등한시할 수 없다. 지금도 난방비가 크게 올라 국민 불만과 우려가 크다. 안전·환경만 강조하면서 재생에너지가 자리 잡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값비싼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설치가 필수다. 경제성을 기준으로 따지면 활용에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반면에 원자력은 저비용으로 청정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뤄 경제성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 더욱이 요즘같이 에너지 안보가 중요한 시기에는 특히 원자력이 주목받기도 한다. 원자력은 연료 수입 의존도는 10%가 안 된다. 우리나라에 원자력만큼 안정된 에너지 확보 수단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현 정부의 탈-탈원전 정책은 의미 있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에너지 확보 측면에서 원자력 역할이 매우 크다. 우리 원자력연도 미래 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연구가 제한돼 사기가 떨어져 있었는데 현 정부 아래 분위기 반등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원자력연이 해야 할 일이 많겠다.

▲물론이다. 우리 원자력 기술은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데, 이를 더 고도화할 계획이다. 먼저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에 힘을 싣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 인허가를 받은 SMR '스마트'(SMART)를 개발했다. 하지만 개발 이후 다음 단계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이제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스마트는 근래 우리 원자력계가 내놓은 가장 좋은 성과다. 국민 지지와 성원을 받으려면 이를 실제로 지어보고, 실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를 수출하는 것에 힘을 기울이고자 한다. 시기가 좋다. 샌드오일을 채굴하는 곳에서 SMR에 관심을 보인다.

샌드오일 채굴공은 주로 원격지에 있다. 에너지 공급 비용이 확대되면 이는 곧 급격한 채굴 비용, 생산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 번 연료를 채우면 오래 유지되며 건설도 손쉬운 스마트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캐나다 앨버타주 샌드오일 채굴 지역에 스마트가 배치되도록 기관의 힘을 결집하겠다.

보다 발전된 SMR인 i-SMR 개발도 본격 착수한다. 여러 세부 아이디어가 있는데 보다 안전을 기하는 설계를 적용하게 된다. 전력 수요지 근처에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술을 완성코자 한다.

2028년까지 표준설계 인가를 받고, 4~5년 정도 실증을 거치게 되면 2035년께에는 실제 전력망에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는 앞으로 SMR로 갈 수밖에 없다. 이미 가고 있다. 세계 최초로 관련 성과를 낸 우리가 도리어 지금은 뒤에 서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고 바쁘다.

이밖에 초고온가스로(VHTR),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원자로(MSR) 등 선진 원자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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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분야 외에도 욕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우리 정관에 보면 기관 역할로 '에너지 확보'를 강조하고 있고, '원자력 관련 이용을 촉진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미 운영 중인 '양성자 가속기'로 재료 특성을 비파괴 분석해 기업체에 도움을 주는 것, 방사선을 이용해 국민 생활에 편익을 제공하고 질병을 진단·치료하는 것도 정관에 규정된 우리 역할이다.

다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민건강 기여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관은 꾸준히 국민건강 증진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정읍에 위치한 산하 연구소에서 연구 성과를 냈는데 이것이 특히 자랑스럽다.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지르코늄-89)가 가진 특수한 효과로, 암을 사멸시키는 나노물질을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전에 없이 새로우면서 특히 창의성이 빛난다. 앞으로도 계속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

국민건강에 직결된 시설이 연구로 '하나로'인데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 희소 소아암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아이오딘(I)-131 mIBG를 유일하게 국내 생산하는 곳이 하나로다. 그런데 연구로가 정지된 이후 이를 재가동하려면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물론 철저한 원인 분석 후 재가동이 필요한 사례도 있다. 다만 그동안은 그 원인이 아주 사소한 경우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됐다. 국민건강 증진에 그 역할이 큼에도 너무 강력한 규제가 가해지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관련 내용을 협의 중인데 다행히 앞으로는 원인이 사소한 경우 재가동 절차를 완화하는 기준 세분화안을 원안위가 검토 중이다. 국민건강 증진에 더 도움이 되는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차원 '에너지믹스'(전원 구성)에도 힘을 보태려는 것으로 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에너지믹스 업무를 맡고 있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예측 수요만 주어진다면 우리가 전문성을 발휘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원자력·재생에너지 등이 조화롭게 배분되는 구성이 이뤄질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급격히 축소해야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과거 무리하게 잡은 목표를 합리적으로 바로 잡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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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연구기관은 정권 색과 관계 없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하는데 원자력연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색안경을 벗었으면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환대받고 30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 근간이 우리 원자력 기술이고, 원전설계 기술을 국산화하고 자립시킨 곳이 바로 우리 원자력연이다. 국격을 높이고 국부 창출 계기를 이룬 것이다.

우리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했을 정도다. 이를 국민과 정치권도 알아줬으면 한다. 향후에는 정권 교체에 따라 원자력 분야 R&D, 산업 발전이 위축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사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민주당에도 원자력을 옹호하고 인정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 주장이 더욱 강화되고, 현 정부 원자력 중시 의지가 조화되면 정권에 무방하게 원자력 분야가 발전하는 기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우리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지난 1959년부터 이어온 기관 명맥과 명성을 미래로 이어가기 위해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하겠다.

정리=



◇주한규 원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나와 같은 곳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원자력연에 합류했고 도중에 미국 퍼듀대에 진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교편을 잡았고, 지난해 말 원장으로 선임돼 원자력연에 돌아왔다. 미국원자력학회 M&C2017 국제학술대회 기술위원장, 한국원자력학회 학술이사와 원자로 물리 및 계산과학 부회장,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외교부 과학기술외교자문위원회 원자력분과 위원장,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차기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