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와 LX세미콘의 디스플레이 반도체 협력은 매우 이례적이다. LX가 LG에서 계열 분리된 그룹이고 LX세미콘은 LG디스플레이에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을 공급 중인 회사다.

DDI는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수많은 픽셀을 구동하는 데 쓰이는 반도체다. 쉽게 얘기해 각각의 픽셀에 어떻게 작동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이미지나 영상을 화면에 보여주는 실질적 역할을 한다.

디스플레이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제조사와 DDI 회사 간 협력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디스플레이에 대한 기술정보가 공유돼 신뢰와 보안이 담보되지 않으면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 DDI 분야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 시스템LSI가, LG디스플레이는 LX세미콘(구 실리콘웍스)과 주로 협력해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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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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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X세미콘 대전 연구소

그러나 코로나발 공급망 재편이 이런 틀을 흔들었다. 최근 몇 년 DDI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경제 폭발로 품귀현상이 일었다. 현재 공급 부족은 다소 완화됐지만 혼란은 삼성디스플레이로 하여금 공급망 안정화의 필요성을 촉발했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 DDI 협력사인 매그나칩 중국 매각이 더해졌다. 매그나칩 주요 주주인 헤지펀드들이 회사를 중국계 사모펀드에 매각하려던 것이다. 미·중 반도체 갈등에 매그나칩 매각은 불발됐지만 삼성은 이때부터 새로운 DDI 협력사를 찾았고, LX세미콘과 이해관계가 맞아 협력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익그룹도 삼성과 협력을 위해 DDI 사업에 진출했다.

삼성은 LX세미콘이 LG디스플레이 협력사지만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생산 및 공급이 가능한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LX세미콘은 1999년 설립된 실리콘웍스가 모태인 회사로 디스플레이 반도체를 전문으로 해왔다.

LX세미콘은 삼성디스플레이가 LG디스플레이 경쟁사지만 스마트폰·노트북·태블릿 등 중소형 OLED 시장 1위고 고객 다변화에 최적이란 점에서 협력을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X세미콘 사정에 밝은 한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DDI뿐만 아니라 터치IC에서도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며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삼성과 고객사를 다변화하려는 LX세미콘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계는 '차별화'를 명분으로 독점적이면서 배타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같은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LG전자 노트북에 OLED를 공급한 사례도 생겼다. 신학기를 맞아 출시된 LG전자 '그램' 노트북에 삼성디스플레이 '리지드(Rigid) OLED'가 탑재됐다. 관례대로라면 LG전자 노트북에는 LG디스플레이 패널이 적용됐어야 했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가 플렉시블(Flexible) OLED만 생산하고 있고 스마트폰·노트북·태블릿과 같은 중소형 OLED 시장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장 경쟁력을 갖춰 삼성디스플레이와 LG전자 협력이 성사됐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혁신을 이루는 데 경계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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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OLED가 적용된 LG 노트북 그램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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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구동 신호 흐름도. <자료=삼성디스플레이>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