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를 사용하신다면, 대부분 단축키를 사용하실 겁니다. 단축키는 복수의 키보드 자판을 동시에 눌러, 특정 기능을 불러오는 조합을 뜻하는데요. 필요한 기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굉장히 편리하죠. 그래서 대부분 운영체제(OS)와 프로그램에서 단축키를 제공합니다. PC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도 키보드를 연결하면 단축키를 지원하고요.
윈도우 기반 PC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축키를 꼽으라면 복사(Ctrl+C), 붙여넣기(Ctrl+V), 작업관리자 실행(Ctrl+Alt+Del)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많은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단축키니까요.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해보셨나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축키는 언제부터 사용됐고, 도대체 누가 개발했을까”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편리함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단축키도 그래요. 시초가 있고,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가 있어요. 단축키 역시 누군가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복사·붙여넣기는 언제·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단축키를 애용하시나요. 앞서 언급했듯 복사, 붙여넣기가 아닐까 싶어요. 두 단축키는 거의 한 세트로 여겨지는데요. 떼어낼 수 없는 단짝 같은 사이에 가깝죠. 국내에서는 흔히 무언가를 그대로 베꼈거나, 두 대상이 많이 닮았을 때 복사와 붙여넣기 줄임말인 ‘복붙’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니까요.
이처럼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은 복사와 붙여넣기는 레리 테슬러(Larry Tesler)라는 인물이 1970년대 개발했어요. 당시 그는 제록스 팰로앨토 연구소(Xerox PARC)에 재직하면서 단축키를 만들었다고 해요. 테슬러는 처음부터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 개발을 목표로 하지 않았어요. 당시 테슬러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여러 텍스트 편집 도구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복사, 붙여넣기가 포함돼 있었던 거죠.
테슬러도 이를 인정해요. 그는 과거를 떠올리며 이런 말을 남겼어요. “수년간 여러 동료들과 협력해 패턴을 개발했지만 복사, 붙여넣기, 잘라내기는 별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모덜리스 텍스트 편집이라고 하는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GUI) 패턴 모음 중 하나였다”.
복붙, 왜 하필 Ctrl+C, Ctrl+V 조합이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는 Ctrl+C, Ctrl+V 조합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죠. 일각에서는 키보드 배열에 주목해요. 키보드 하단을 보면 ‘ZXCV’ 자판은 서로 근처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Ctrl 자판 바로 위에 있어요. 그래서 한 손으로도 누르기 편한 Ctrl과 ZXCV 자판을 조합했다는 주장이에요.
정말 그럴까요. 레리 테슬러는 지난 2016년 지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복사, 붙여넣기, 잘라내기(Ctrl+X), 실행취소(Ctrl+Z) 단축키 탄생 배경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잘라내기의 알파벳 X는 삭제의 표준 기호였어요. C는 복사(Copy)의 머리글자였고, V는 캐럿(Caret)을 뒤집어놓은 모양이라 선택됐죠.
캐럿은 특수문자 ‘^’을 의미하는데요. 문장에서 누락된 요소를 표기하는 교정기호로도 쓰여요. 이를 뒤집으면 V와 비슷해져요. 모양이나 의미상으로 잘라내기 단축키와 어울리는 기호인 셈이죠. 실행취소는 알파벳 Z 표기 방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Z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으로 내려간 뒤,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을 긋잖아요.
복사·붙여넣기 사용이 시작된 시점은?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는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을까요. 다시 한번 레리 테슬러의 인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테슬러는 1980년대 애플(Apple)로 이직했는데요. 애플은 그가 개발한 단축키를 리사(Lisa)라는 PC에 적용했습니다.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는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우로 옮겨갔어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1.0를 개발하면서, 애플 운영체제(OS) 매킨토시 기술 일부를 라이선스했는데요.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를 그대로 베끼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단축키도 그중 일부였죠.
그래서 초창기 윈도우에서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는 조금 달랐습니다. 복사는 Ctrl+Insert, 붙여넣기는 Shift+Insert 조합이었어요. 복사(Ctrl+C), 붙여넣기(Ctrl+V) 조합으로 굳어진 건 그다음 세대 윈도우부터예요. 그럼 초창기 윈도우에서 쓰이던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는 어떻게 됐을까요. 신기하게도 지금도 여전히 작동해요. 직접 한번 눌러보세요.
워드스타(WordStar)와 같은 문서 편집기 얘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1970년대 만들어진 워드스타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같은 상업용 문서 작성 편집기인데요. 인기가 대단했다고 해요. 워드스타의 성공은 복사, 붙여넣기 단축키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됩니다.
Ctrl+Alt+Del, Alt+Tab...다른 단축키는?
복사, 붙여넣기만큼 자주 쓰이는 단축키가 있습니다. Ctrl+Alt+Del과 Alt+Tab이죠. 전자는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할 수 있는 작업관리자나 잠금, 사용자 전환, 로그아웃 등 별도 메뉴를 띄우는 데 사용돼요. Alt+Tab은 켜져 있는 프로그램 전환 단축키에요.
Ctrl+Alt+Del 단축키는 데이비드 브래들리(David Bradley)가 IBM에서 근무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PC를 사용하다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전원을 뽑아서 해결했는데요. 브래들리는 대안으로 컴퓨터를 리부팅하는 Ctrl+Alt+Tab 단축키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Ctrl+Alt+Del 단축키와 관련, 흥미로운 일화가 있어요. 지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는 한 대학 행사에서 “Ctrl+Alt+Del 조합은 실수였다”고 고백했어요. 원래 Ctrl+Alt+Del 단축키에 보안 기능을 할당하고, 작업관리자를 실행하는 단일 버튼을 만들려고 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시 게이츠가 작업관리자 버튼을 만들었다면 지금의 Ctrl+Alt+Del 단축키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Alt+Tab은 19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내놓은 윈도우 2.0 버전부터 지원한 단축키에요. 아쉽지만 누가 Alt+Tab 단축키를 개발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테크플러스 윤정환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