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페이코인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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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하고 합법적으로 사업하는 기업이 바보 아닌가요.”

최근 가상자산 프로젝트 '페이코인' 서비스 중단 위기에 대한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제도권 내에서 안정적으로 사업하려 한 것이 '긁어 부스럼'이 됐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페이코인은 하려는 지갑 사업자 신고를 분명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가상자산 지갑 사업자는 국내에 셀 수 없이 많다. 누구나 500만원만 있으면 외주 개발로 지갑을 뚝딱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등록된 지갑 사업자는 9곳에 불과하다. 사업자 등록이 사실상 자진신고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대부분 신고 자체를 하지 않는다.

미신고 지갑 사업자는 처벌 대상이지만 모니터링도 어렵고 신고 대상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다. 누적 가입자 200만명을 돌파한 디지털지갑 '클립'(그라운드X)의 경우 신고 없이도 서비스를 잘 운영하고 있다. 누가 봐도 지갑 사업자지만 그라운드X 스스로는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진신고를 해야겠다고 판단한 페이코인은 된서리를 맞았다. 결제 구조상 원화를 취급하고 있으니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받아오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실명계좌 발급에 성공한 가상자산사업자는 비트코인이 생긴 이래 오직 5곳뿐이다. 안전하게 사업하려다 사업이 엎어지게 됐다.

가상자산 거래업자도 상황은 비슷하다. 홈페이지에서 한국어만 쓰지 않으면 신고 수리 없이 국내 영업에 큰 지장이 없다. 중국 개발자에게 1000만원만 주면 '글로벌 거래소'를 만들어서 한국인이 한국인 대상으로 영업할 수 있다.

거래소 자체 발행 코인도 마찬가지다. 거래소 대표가 코인을 수백억원어치 찍어내 자기 거래소에 상장해도 신고 수리 시 '신고사항 없음'으로 제출하면 무사통과다.

현재 금융 당국은 '국내 거래소에는 자체 발행 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정금융정보법상 자체 발행 코인 취급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 최근 조사에서 사업자들이 서면으로 '자체 발행 코인이 없다'고 답변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국내에서 살인을 법으로 금하고 있으니 살인 사건이 없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만약 페이코인이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해도 상황은 이상하게 꼬인다. 가상자산 거래업자로 등록하면 페이코인 발행사 페이프로토콜AG는 자체 발행한 코인을 취급하는 가상자산거래소가 된다. 법을 지키려고 하면 또 법을 어기게 되는 외통수다.

보면 볼수록 가상자산 시장에서 제대로 신고하고 사업하는 기업은 바보가 맞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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