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

LG디스플레이가 지난달 31일 파주 P7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국내에 남아 있던 마지막 TV용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파주 P7은 2006년 4월 준공식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해서 '한국 미래의 상징'이라는 축사를 남긴 곳이다. 실제로 이후 LCD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를 세계 1위로 만든 주역이었다. 일본 디스플레이 기술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던 안팎의 우려, 때론 비아냥을 극복한 것이 LCD였다.

국내 TV용 LCD 사업 종료는 그래서 안타깝다. 특히 중국 추격에 가동 중단 시기가 앞당겨진 게 뼈아프다. 기술은 물과 같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LCD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대결이었다.

한국디스플레이협회에 따르면 2012~2019년 8년 동안 중국 정부가 중국 상위 4개 기업에 지원한 보조금은 5조원이 넘었다. 디스플레이 시설 투자 및 생산과 관련해 중국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막강한 화력을 지원받은 중국 LCD와 홀로 맞서 싸워야 하는 한국 LCD의 대결은 그야말로 불공평한 게임이었다.

불공평한 경쟁의 여파는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 미치고 있다. 특히 LG디스플레이에 생긴 상처가 깊어 우려된다. 회사는 지난해 2분기 4000억원대 영업손실에 이어 3분기에 7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4분기에도 개선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불공평한 경쟁에서 우리 기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중국 정부의 지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동시에 LG디스플레이가 중국의 추격을 피해 사업을 전환하는 데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치우쳐서 중소형을 대비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LG디스플레이는 TV로 대표되는 대형 디스플레이 패러다임을 바꾼 회사다.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에서 LCD로 기술이 진화할 때 항상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2012년 세계 최초로 55인치 OLED를 양산하면서 또 한 번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래서일까. 대형 OLED를 중심에 둔 전략은 대규모 투자와 시장의 늦은 개화가 맞물리면서 발목을 잡았다. 신기술이 개발되고 범용화될 때까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개화가 빠르게 진행된 중소형 OLED 시장을 놓치며 포트폴리오에 균열이 생겼다.

지난해 말 LG디스플레이가 아이폰14 프로 모델에 디스플레이를 납품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애초 계획보다 지연된 시점이었다. 주춤하는 사이 후발주자는 격차를 좁히고 있다.

LG디스플레이에 기회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LCD 중심이던 차량용과 IT용(노트북·모니터 등) 디스플레이가 OLED로 전환되고 있다. 화질과 성능은 물론 저전력·디자인 자유도에서 OLED를 찾는 자동차 회사와 IT 기업이 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투 스택 탠덤 등 차량용 OLED에서 기술이 가장 앞선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애플도 LG디스플레이의 기술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닌가.

LG디스플레이는 누구보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핵심 가치를 잃어선 안 된다.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도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온다. OLED라는 차별화 기술을 보유한 LG디스플레이에 기회는 분명 다시 올 것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