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이 지난해 주차장 화재 사고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자체 모의훈련도 실시했지만 대전 현대아웃렛 화재 참사를 막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안전보건 지침에서도 주차장 차량 화재 위험을 인지하고 대응 강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백화점 경영진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사측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에 수사 초점이 맞춰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대전 현대아웃렛 화재는 지하주차장 화물차 배기구 과열로 발생했다. 대전경찰청은 화재 당시 발화점 부근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방 설비를 제어하는 화재수신기가 꺼져있던 것이 원인이다. 화재 참사 원인이 인재(人災)로 무게가 쏠리면서 본사도 관리 책임 여부를 수사 받게 됐다.
현대백화점은 각 사업소 주차장 내 화재 위험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작성한 시설안전 관리문서에 따르면 전기차 이용고객 방문 증가에 따른 차량 화재 대응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주차장 전기차 화재 발생시 초동 대응을 위한 소화포 도입도 개선사항으로 적었다. 또 자체적으로 주차장 화재 사고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위기상황 대응 모의훈련도 진행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한 해에만 위기관리 훈련 및 비대면 안전교육을 총 74회 실시했다. 사업소별 평균 3.1회다.
현대백화점이 공시한 지속가능 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차량 화재 발생에 따른 초동 대처와 사후조치 등 단계별 대응 시나리오도 마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은 산업안전 전문업체인 경신산업안전에 외주를 맡겨 위기대응 행동요령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도급사 대상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해당 가이드북에는 화재 시뮬레이션을 포함해 위기 발생시 점내 지휘 체계와 표준 대응 프로세스가 담겼다.
이러한 대응 체계 마련에도 대전 아웃렛 화재 사고 인명피해가 컸던 것은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연동된 화재수신기가 꺼져있던 탓이다. 경찰은 화재수신기 정지를 고장이 아닌 고의로 보고 있다. 오작동 우려로 누군가 일부러 꺼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사업소 시설안전 교육에서 누수·범람사고 예방 조치를 위해 도급·협력사에 알람밸브 조작 방법을 숙지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관리 문서에 따르면 누수 사고 대다수가 스프링클러 배관에서 발생하며 이를 잠그기 위해 초동조치 인원 대상으로 알람밸브 조작 방법 숙지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수사기관은 아웃렛 측이 누수를 막기 위해 스프링클러 알람밸브를 폐쇄 상태로 관리했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현대백화점을 상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조사 중인 대전고용노동청도 이번 감식 결과를 토대로 혐의 입증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현대백화점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했는지, 현장 대응조치는 적절했는지, 원청으로서 하청에 대한 안전관리·감독 책임이 이뤄졌는지가 쟁점이다.
대전노동청은 지난달 3일 김형종 현대백화점 대표와 방재·보안시설 하청업체 대표 등 3명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김형종 대표는 이사회서 안전보건전담 대표 직책을 맡고 있으며 직속으로 안전보건담당을 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유통업계서 첫 사례가 된다. 경영진 법적 리스크도 불가피하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재 경찰 수사 중인 사안으로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