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5>실패의 엑스 마키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이 라틴어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기계 장치로부터 내려온 신'이 된다. 예전 연극에서 복잡하고 꼬여 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 이 상황을 정리하거나 반전시키는 신과 같은 존재를 기계장치로 연출하고는 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5년작 영화 '우주전쟁'엔 한참 지구를 정복해 나가던 외계인들이 박테리아 때문에 죽으면서 어찌 보면 결말이 싱겁다. 이건 허버트 조지 웰스의 1898년 소설 '우주전쟁'을 쓰면서 인류 종말이란 결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입한 갑작스러운 반전 플롯이기도 하다.

많은 기업은 실패한다. 사소하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사건이 대다수이지만 골리앗이나 베헤못(Behemoth)의 죽음 같은 사건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건엔 으레 석양빛을 뒤로한 채 쓰러진 이를 밟고 선 다윗과 그가 치켜든 번쩍이는 검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기업혁신사를 장식하는 많은 몰락 사건이 있다. 그 가운데 아직도 뇌리에서 지우기 어려운 것이 바로 블록버스터의 추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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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블록버스터 파산 이후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기술 변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탓일까. 많은 기업이 기술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증오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경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온전히 사실이 아니다. 블록버스터의 몰락은 사실 자멸이었다.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를 끝장낼 기회는 얼마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2000년 넷플릭스의 두 창업자는 블록버스터에 넷플릭스 매각을 제안하기조차 했다. 금액은 블록버스터에는 잔돈이랄 수 있는 5000만달러. 알려지기로 블록버스터의 답은 말 그대로 '비아냥'이었다고 한다.

2004년이 되고 넷플릭스의 매출이 5억달러에 이르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 온라인(Blockbuster Online)이라는 자체 온라인 DVD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다. 블록버스터의 새 온라인 서비스는 구독자를 빠르게 늘려 간다. 출시한 지 1년이 채 안 돼 구독자 100만명, 2006년 말 200만명이 된다.

하지만 여기 어쩌면 궁극의 엑스 마키나 전조가 될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한다. 첫째는 블록버스터가 안고 있던 부채 10억달러였다. 두 번째는 경영 또는 그 정점이랄 수 있는 이사회 그 자체였다. 이즈음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던 칼 아이칸이 이사회 3석을 확보했다. 이들은 주가와 수익을 높이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이는 신규 투자와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는 전략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즈음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라는 궁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2010년에 연체료를 복원하기까지 하지만 이해 10월 블록버스터는 10억달러의 부채를 거의 줄이지도 못한 채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하지만 궁금함이 남는다. 블록버스터 위기의 첫 징후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주장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이것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모두가 블록버스터를 싫어했습니다.” 이때 이미 블록버스터는 언젠가 추락할 수밖에 없는, 파편이 떨어져 나가는 비행기 신세가 된 셈이었다.

골리앗의 탄식은 오늘도 들린다. 당신이 만일 쓰러진다면 기술 변화는 조력자일 뿐 그 원인은 자기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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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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