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납품단가 연동제 의무화를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23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오는 7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은 그동안 원자재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변동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토로했다. 개정안은 납품 대금 1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을 대상으로 가격 변동률 10% 이내에서 수·위탁기업이 협의, 납품대금을 조정하도록 했다.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하면 지난 2008년 처음 논의를 시작한 이래 14년 만에 중기업계 숙원이 풀리는 셈이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으로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첫발을 떼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대·중소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전히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위탁기업이 합의하면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이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기우는 아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결국 갑을관계 문제여서 '독소조항'이라고 따지고 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영원히 상생할 수 없다”면서 “만약 독소조항으로 활용하는 대기업이 있다면 나쁜 대기업 아니겠냐”고 말했다. 결국 대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읽힌다.
하지만 2009년 납품단가 연동제 대신 도입한 납품대금 조정협의제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을인 중소기업이 거래 중단 등 보복을 우려해서 납품대금 조정 협의 신청을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소·벤처기업 대표를 만나보면 갑을관계는 거래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기업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아 제품을 납품하거나 거래가 체결돼도 이를 기사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사 보도자료도 대기업과 관련된 내용이면 최종 컨펌(확인)을 받아야 한다. 대기업은 갑이고 우리(중소기업)는 을인데 어쩔 수 있냐고 입맛만 다실 뿐이다.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입법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보인 태도를 보면 우려가 든다. 국회 상임위에서 중기부는 납품대금의 10% 이상 원재료 가운데 수·위탁기업이 '협의'해서 연동 대상 원재료를 정한다는 안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모든 원재료가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수·위탁기업이 대상 원재료를 협의하도록 열어 두자는 것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쌍방 합의 시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고 지적하자 중기부는 한발 물러섰다. 소극적인 중기부 자세가 아쉬운 대목이다. 애초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 자율' '상생의 기업 문화 조성' 등 민간에 맡겨서 해결될 일이라면 법제화에 나선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정부는 입법화에 나선 이유를 다시 한 번 반추하길 바란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