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46)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디지털시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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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인간, 세계, 우주의 근본원리, 삶의 본질, 사상, 문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윤리는 철학의 한 부분으로서 도덕의 의미·원천·법칙을 밝히고 실행방안을 제시한다.

개는 늑대와 같은 종의 동물이다. 야생에 있을 때는 인간의 적이거나 단백질 보충을 위한 사냥감이었다. 인간은 개를 길들여서 가축으로 만들었다. 사냥을 돕거나 집을 지키는 역할을 맡겼다.

현대사회에선 어떨까. 풍족한 세상에서 개는 식량 기능을 상실했다. 사냥을 도울 필요도 없다. 아파트 등 주거에 대한 보안이 좋아지면서 집을 지키는 역할도 사라졌다. 반면에 시각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이 있고 마약을 탐지하거나 범인을 쫓는 경찰견이 있다. 가정에선 인간의 경제활동에 아무런 보탬을 주지 못하지만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가족이 됐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 학대는 금지된다. 법무부가 내놓은 민법 개정안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인간과 개를 아우르는 철학은 무엇일까. 개를 도구로서만 본다면 사냥을 돕고 집을 지키는 역할이 중요했다. 그러나 인간과 삶을 공유하면서 도구의 지위를 벗어나 떼어낼 수 없는 가족생활의 주체가 됐다. 우리는 개 관점에서 먹이가 부족하지 않은지, 산책해야 할 시간인지, 아픈 곳은 없는지 살핀다. 개를 도구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주체로 인정한다면 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존의 철학이 필요하고, 그 관계를 조율하는 것은 인간이다.

디지털시대를 사는 인간과 인공지능(AI) 등 비인간형 존재 사이에 필요한 철학은 무엇일까. 기존 인간 중심 철학이 옳은 것일까. 새로운 철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탈리아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는 '정보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데이터와 정보 증가,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과 인간 접속을 넘어 인간과 기계·AI 등 비인간 존재와의 접속을 강화한다고 했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생명체에 해당하는지와 관계없이 데이터, 정보로서의 속성이 크게 드러나면서 기존과 달리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양과 질의 데이터 및 정보가 만들어지고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모두 아우르는 철학을 찾아야 한다. 전통적인 자본주의·산업사회는 인간 중심의 자유를 강조하고 확대해 왔다. 인간 중심 사회는 인간 아닌 것을 이용하고 파괴한다. 동료인 인간조차 이용하고 가차없이 버린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프라인·온라인·가상공간 등으로 나뉘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고, 그들을 포괄하는 융·복합 정보세계(inforsphere)로 들어갔다. 현실과 온라인·가상공간은 구분되지 않고 섞여서 동시에 거주하는 곳이 됐다. 인간이 기계·AI에 의해 거꾸로 영향을 받는 시대다. 심장이 나쁘면 스테인레스, 합금 등 스텐트의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서서히 기계와 합체되고 있고, 쉽게 떨어질 수 없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 끝은 AI와의 접속이다.

가상인간 등 인공적 존재까지 인간과 접속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행위 주체가 되고 있다. 멀쩡한 신사도 자동차만 몰면 사나운 늑대가 될 수 있다. 회사에선 온순한 직장인도 가정에선 폭군이 될 수 있다. 반대도 가능하다. 오프라인,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자아를 지닌 인간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과거 기계는 인간의 이익에만 봉사했다.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시대다. 도구·기계·인공지능은 쓰고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 물리적·정신적으로 연결, 접속되어 있다. 인간의 행위로 영향을 받는 비인간 존재의 관점에서 접속된 삶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 개체를 초월한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디지털시대를 여는 철학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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