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온, 자연재해 등 환경 변화로 인한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다.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여러 개발도상국에서도 기존 에너지 공급 위주 정책에서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 등 에너지 수요관리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지구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에 직면했다. 기후변화 속도는 더 빠르게, 피해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회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 과제가 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36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글로벌 기업도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기후기금을 조성하는 등 탄소중립 대응책 마련에 동참한다. 주요 선진국은 기후목표 상향 조정, 탄소 국경세 도입, 대규모 그린 투자, 석탄발전 폐지,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등 탄소중립 사회를 향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 도입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속 가능한 개발 시나리오'(SDS; Sustainable Development Scenario)에서 세계 에너지효율을 연 3% 이상 개선할 것을 제시했다. 나아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NZE)'를 목표대로 달성하려면 이보다 높은, 앞으로 10년 동안 연 4%는 개선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경기회복 정책 속에 탄소중립 달성 과제를 포함하는 등 에너지효율 투자가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까지는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필요한 에너지 혁신을 가속하기 위해 대학·연구기관·기업·정부 간 긴밀한 협력과 연구개발(R&D)에 대한 과감한 지원, 지속적인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이 같은 탄소중립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20년 시작한 '파워유닛 스마트 제조센터 구축'은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여 탄소중립에 기여할 대표 사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경남도·창원시가 300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재료연이 주관, 경남테크노파크가 참여하고 있다. 사업은 내년까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 일원에 센터 구축을 완료하고 파워유닛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게 골자다. 스마트 제조기술 지원동, 실증연구동, 사업화 지원동 등 3개 동에서 기구축 장비와 연계해 시제품 제조 환경을 구축하고 시험분석 및 기업지원 체계도 가동한다. 고급 전문 인력을 양성해서 공급하고, 개발기술 제품화를 전 주기로 지원해 기업 지속 성장과 고효율 파워유닛 소재·부품 산업 조기 정착을 유도한다.
'파워유닛'(Power Unit)은 감속기, 제어기 등과 이를 모듈화한 액추에이터로 구성된 동력 전달 제어 장치다. 자동차·선박·항공기·발전플랜트·로봇 등에 탑재하는 엔진, 구동 모터, 터빈 등을 구동·제어하려면 반드시 파워유닛이 필요하다. 엔진·모터·터빈의 에너지 사용 효율은 물론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완제품인 자동차·선박·항공기·로봇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특히 전기차, 전기선박, 로봇, 드론 등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제품에서 전동 파워유닛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전동 모터 효율을 1% 높이면 100㎽급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탄소중립을 위해 고효율 파워유닛 개발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이고, 미래 기계소재산업의 명운도 걸려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파워유닛 소재부품 개발은 물론 제조·실증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한국자동차연구원 등 파워유닛을 다루는 국내 13개 기관을 분석한 결과 성능·신뢰성 평가, 원천기술개발, 상용화 기술개발 등 파워유닛에 관한 개발·제조·실증 활동이 대부분 터빈·모터·엔진 가운데 특정 부문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워유닛 시장이나 연구개발(R&D) 수요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국내 파워유닛 관련 278개 기업을 대상으로 파워유닛 개발 및 지원 인프라 구축사업 수요조사 결과 198개 기업이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그 가운데 125개 기업은 참여 의사를 적극 나타냈다. '파워유닛 스마트 제조센터 구축이 필요하다' '향후 장비를 활용하겠다'는 응답이 각각 77.2%와 69.9%를 차지했듯 재료연 파워유닛 기반구축사업의 필요성은 충분했다. 파워유닛 스마트 제조센터를 성공적으로 구축·운영하면 탄소중립에 기여뿐만 아니라 국내에 새로운 파워유닛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파워유닛 핵심 부품을 국산화해서 파워유닛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센터는 재료연을 비롯한 연구기관과 창업·벤처기업이 모여 R&D, 기술이전, 사업화 등을 추진하는 혁신 거점이 될 것이다. 높은 기대만큼 이 사업과 센터에 쏠린 대내외 관심도 높다. 산업부·경남도, 재료연은 센터 경쟁력을 세계적인 고효율 파워유닛 개발 전진 기지로 육성해서 또 하나의 국가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센터를 거점으로 선진국 대비 7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고효율의 파워유닛 부품 기술과 제품을 90%까지 끌어올려 기술 종속에서 탈피한다는 구체적 계획도 수립했다.
고효율 파워유닛 핵심 부품 기술 확보와 자립화는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주력 산업 고도화에 분명 도움이 된다. 파워유닛 개발과 생산을 수요 맞춤형으로 전환해서 전통산업과 파워유닛산업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고, 이는 국가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ljh1239@kims.re.kr
<필자>이정환 원장= 1982년 재료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시작으로 융합공정연구부장, 산업기술지원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 부소장, 소장을 지냈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에서 독립한 한국재료연구원으로의 원 승격을 주도했고, 2020년 한국재료연구원 출범과 함께 초대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한국소성가공학회장, 한국엔지니어연합회 창원지역회장, 한국산업기술인회장, 경남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