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만 있는 신이 있다. 로마의 문을 지킨다. 안과 밖 모두를 살피기 위해 머리 앞뒤로 얼굴이 있다. 중세로 오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야누스다.
과학기술 발전은 많은 이익을 가져왔으나 생명·신체·재산에 미치는 위험도 커졌다. 로봇을 공장에 투입하면 효율적으로 산업활동을 할 수 있다. 오작동 등 오류를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범죄 등과 결합하면 해악이 더 커진다. 정보통신망이 촘촘히 구축·연결되면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업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은행·주식 거래, 쇼핑·결제 등 일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정보통신망이 해킹되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순식간에 마비되고, 피해가 생긴다.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디지털을 야누스라고 한다면 지나칠까.
과거 공장이 매연을 방출했듯 과학기술로 위험을 만드는 계층이 이익을 보고 취약계층이 피해를 떠안았다. 기후 온난화 등 위험은 현재보다 미래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 인간의 일을 자본·기술·기계가 대체하면서 여가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근 사고는 직장, 가정, 여가 장소를 불문한다. 인간 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공간에 위험이 상존한다. 위험은 인간을 넘어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생태계를 위협한다. 자연생태계 파괴는 그 위험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준다. 자연 이용을 넘어 자연을 조작한 결과다. 미리 막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진다. 해결 시간을 놓치면 모든 대책이 먹히지 않는다.
기업이 상품을 만들 때 안전은 비용 요소로 취급됐다. 절감해야 할 대상에 그치면 안전이 취약해진다. 안전이 상품의 핵심 구성 요소가 돼야 한다. 안전이 탑재되지 않은 상품은 팔 수 없고, 살 수 없어야 한다. 안전의식, 교육, 안전 인증도 중요하다. 산업안전 관련 법령이 강화되고 있다. 강도 높은 처벌 등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궁극적 해결책이 아니다. 위험 방지 자체가 중요하다.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산업 자체의 안전 환경을 조성하고, 안전을 지원하는 산업을 신규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안전 컨설팅·감사·실사·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섣부른 안전 규제는 기업이 외부에 위험을 하청하는 방식으로 회피하게 만든다. 위험의 재생산을 막을 수 있는 안전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 기업, 학계 등 소수 엘리트만 안전 논의를 독점하면 안 된다. 위험 현실화로 피해가 날 수 있는 사람과 일반인이 참여해야 한다. 과학기술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위험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불이 위험하다고 원시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삶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위험의 해악을 점검하고 극복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력이 충돌하면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공동체를 만들고 지도자를 뽑은 것은 그럴 때 최종 결정을 해 달라는 것이다. 토론과 설득을 통해 이뤄진 의사결정과 정부가 행한 결단을 존중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 안전 시스템이 아닐까.
안전은 산업 현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편리와 함께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만큼 일상의 위험과 안전이 더욱 중요하다. 과학기술 혜택만큼 위험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는 안전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스스로 일상에서 안전을 챙겨야 한다. 그것이 생활안전이다. 위험 확인, 안전 점검, 예방을 생활화해야 한다. 남의 안전도 챙겨 주고 조언하자. 위험과 안전에 관한 아이디어를 토론하고 기록하고 관리하자. 안전 활동의 반복 속에서 안전을 고도화할 수 있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안전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권을 헌법상 권리로 격상해야 한다. 생활안전 확립만이 과학기술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격 요건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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