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대학(大學)'에서 찾은 교육 목표, 기업이 원하는 인재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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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우 동국대 융합교육원장·AI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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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어느 봄날 오후 '알파고'라는 일개 프로그램이 지구촌의 모든 이를 경악하게 했고, 인공지능(AI) 뉴스는 TV와 신문 등 모든 매체를 점거했다. 그로부터 6년 후 AI 관련 뉴스가 제법 뜸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구 말마따나 “미래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세계 기술전쟁 최전선에서 숨 가쁘게 경쟁하는 기업이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다. 기업을 이끌 실력 있는 소프트웨어(SW)·AI 인력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데도 자기를 받아 주는 직장이 없다는 청년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에 우수 인재가 왜 없겠는가. 다만 기업이 당면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 기술을 확보해서 나아갈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을 갖춘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력수급 문제는 해결에 필요한 막대한 급부가 있음에도 해결되고 있지 않다. 인력 문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경제 주체가 함께 풀어야 한다.

이유는 경제 시스템과 인재 양성 간 상관관계에 있다. 18세기 후반 시대적 변혁을 넘어 인류에게 오늘날과 같은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해 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발전하기 위한 생산성의 영구적 향상을 보장할 수 있는 인재 양성 교육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제시한다. 존 케인스는 “'국부론'에는 모든 대학 헌장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문장으로 구성됐다”라는 말로 칭송했을 정도로, 지금의 언어로 말하면 '수요지향적'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양에서는 서양보다 2000년 이상 앞선 시점부터 이상사회 실현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중국 대표 고전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대학지도(大學之道, 대학의 도)를 선언한 것이다. 대학의 도는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학생 저마다의 소질과 역량을 밝히는 것, 둘째는 학생의 지식과 역량이 매일 매일 새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지도하며, 마지막으로는 졸업 후 사회 모습이 가장 좋게 될 수 있도록 시민 사회를 이끌어 가는 노력을 경주하는 사회적 리더로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는 얼마 전 4차 산업혁명, 인구절벽, 팬데믹 등 여러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서울대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읽어 본 사람 가운데에서 서울대 계획을 찬탄하지 않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첫째 항목은 '문명사적 전환기의 서울대 교육 혁신'이다. 앞에서 말한 '대학지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울대 발전계획 첫 번째는 '지어지선', 둘째는 '명명덕', 셋째는 '신민'에 각각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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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물론 서울대 발전계획서를 빌려 말하면 교육은 '졸업생이 직업을 통해 자립하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하면 대학 교육의 목표는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주어진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세워 놓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이 필요한 역량이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기업은 알고 있다.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이를 알아내고, 또 교육과정을 통해 이런 실력을 갖추도록 학생을 지도하면 된다.

명확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두 개의 악마가 똬리를 틀고 있다. 첫째는 기업과 대학 사이 소통 과정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이 자기 조직 내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역량'의 구체적 내용을 대학에 알리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않고, 대학이 이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 기업과 대학이 이를 제거함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졸업생을 배출해서 '대학'(大學) 목적을 달성하고, 나아가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함은 물론 궁극적으로 세계 자유경제체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목적의식을 더욱 강조해야만 한다. 이것이 곧 우리 자신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둘째는 기업이나 대학 어느 조직에서든 업무 수행 성과에 정당한 인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력과 그에 따르는 성과가 개인의 임금 및 승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신의 임금과 승진에 무관한 일을 핵심성과지표(KPI)로 설정한 직장인이 있을까? 만일 있다면 그의 상사는 그를 지지할까?

기업과 대학이 힘을 합쳐서 우리 사회로부터 악마를 쫓아낼 방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학교육인증제도의 현실적 운영 방안을 확립해서 실효성을 담보하고, 나아가 현재보다 더욱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컴퓨터 분야 공학교육인증제도는 한국, 미국 등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협약이다. 공식 명칭은 서울어코드(Seoul Accord)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약 2년 동안 준비해서 2008년에 출범했다. 협약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회원국의 인증을 받은 졸업생은 전원 국제적으로 동등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을 상호 인정하며, 이는 곧 국가 인력 교류와 관련된 업무에 적용된다. 둘째 인증을 받은 대학과 학과는 교육 품질을 보장하고 지속적 개선을 보장해야 한다. 각 대학 및 학과 운영과 관련된 제반 규정, 교육과정 운영 실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셋째 졸업생의 국제적 동등성을 보장하기 위해 10여개 항목으로 구성된 학습성과를 서울어코드 공식 문서로 규정하며, 모든 졸업생이 이러한 학습 성과를 보유함을 보장하는 학과에만 인증을 부여한다. 즉 서울어코드 10개 학습 성과 항목이 컴퓨터 분야 졸업생의 역량에 대한 국제표준이다. 이 항목은 인증제도 3대 핵심 가치 가운데 최우선 가치인 '수요지향적 교육'임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산업 수요를 반영, 회원국 간 협약으로 이뤄진 것이다. 참고로 졸업생 전원의 역량을 보장하는 개념을 '성과중심적 교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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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컴퓨터 분야 국제교육인증제도의 창립 국가며, 국제협약체가 표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주인의식을 다지며 협약에 참여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지난 2008년부터 7년 동안 '서울어코드활성화사업'을 시행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SW중심대학 지원사업'은 '서울어코드 활성화사업'의 후속 사업이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우리 스스로 창립한 세계 유일 컴퓨터 분야 국제교육인증제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더니 모든 정부의 지원도 사라졌다. 이제 15개 회원국 가운데 1개국으로서 그 역할이 그치고 있다.

국내에 공대가 설치된 164개 대학 가운데 75개 대학 419개 학과가 인증받고 있으며, 매년 2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 대학, 학과 교수진을 자신의 임금이나 승진과는 별개 업무로 정의를 실현하고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해 나가고 있는 영웅들'로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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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과정은 순탄치 않다. 2010년 이후로는 인증을 받는 학과 수가 정체되더니 2014년부터는 인증 학과 수가 감소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신규 인증에 참여하는 학과가 전무함을 알 수 있다. 얼마 안 되던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해 나가고 있는 영웅'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 간 미해결 상태로 이어지던 전문 인력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다. 몇 년이 지난 후 더 심각한 표정으로 이러한 호소문을 쓰고 있을 누군가가 있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어 본다.

이강우 동국대 융합교육원장·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

〈필자〉이강우 원장=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IT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과 교육·연구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으며, 현재 동국대 융합교육원장·AI융합대학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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